81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73 이규식 베드로

73. 이규식 베드로(1923-1950?)

 

이규식(李圭植) 베드로는 1923년 10월 9일 평안남도 강동군 원탄면 상리 35번지(현 평양시 삼석구역 원흥리)에서 이동복 바오로와 이동춘 막달레나의 장남으로 태어나, 1939년 4월 9일 부모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과묵하고 순명을 잘하였으며, 소처럼 우직한 성품에 말보다 행동을 앞세워 주위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을 들었다.

이규식 베드로는 어려서 상리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부모를 따라 평양으로 이주한 뒤 대신리 본당(현 동대원구역 대신동)에서 운영하는 동평 학교로 전학하여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 뒤 그는 2년 동안 동평 학교 급사로 일하였는데, 매사에 성실하고 근면하였으며, 늘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많은 이를 감동하게 하였다. 이에 대신리 본당의 주임 김필현 루도비코 신부는 베드로를 일본 나가사키의 가톨릭 재단인 토오료(東陵) 중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성소 계발과 미래의 일꾼 양성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이규식 베드로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으로 돌아와 2년 동안 성모 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는 교사로서 모범을 보여 주었지만, 의복과 같은 외적인 모습에는 무관심하였고, 평소와 같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자주 단식하고 기도하였으며, 절대로 남의 말을 하지 않았다. 출퇴근길에도 언제나 묵묵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규식 베드로는 해방 직전에 성모 학교의 교사 생활을 마감하고 신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대신리 성당의 제의방을 거처로 삼고, 교회 일을 도우면서 생활하였다. 겨울에 불기운도 없는 방에서 모든 어려움을 참고 지내는 그의 모습은 수도자의 극기 생활을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처럼 늘 무릎을 꿇고 묵상하곤 하였다.

1947년 9월, 이규식 베드로는 덕원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의 신학교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1949년 5월 북한 공산 정권이 본격적으로 종교 탄압을 시작하면서 덕원 어운리(현 원산시 송천동)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과 신학교를 몰수하고, 사제와 수도자들을 체포하였기 때문이다. 이규식 베드로 신학생도 하는 수 없이 평양으로 돌아와 서포(현 평양시 형제산구역 서포1동)에 있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 머물면서 수도회 일을 돕게 되었다. 이때 그는 ‘박해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나가 순교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곤 하였다.

1949년 5월 14일부터는 평양대목구에서도 대목구장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신부들이 연달아 체포되기 시작하였다. 서포 수도원도 몰수되었다. 이에 이규식 베드로 신학생은 대신리 성당으로 옮겨 생활하면서 ‘예수 성심회’ 청년들과 함께 박용옥 티모테오 주임 신부의 곁을 지켰다.

12월 6일 마침내 정치 보위부원들이 대신리 성당에 나타났다. 그들은 판공 성사를 주고 있던 박용옥 티모테오 신부에게 동행을 요구하였고, 본당 청년들은 이들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때 이규식 베드로 신학생이 이 급박한 상황을 신자들에게 알리려고 종탑으로 달려가 종을 치자, 보위부원들은 종의 줄을 끊어 버렸다. 그러나 이규식 베드로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종의 추를 잡고 계속해서 종을 쳤다. 이에 화가 난 보위부원들은 그를 종탑에서 끌어내린 뒤 온몸을 짓밟고 구타하였다. 그때 마침 그의 어머니가 달려와 항의하여 보위부원들의 구타는 그쳤지만, 이규식 베드로는 만신창이가 되어 빈 교실로 옮겨졌다.

박용옥 티모테오 신부는 신자들이 보위부원들을 막아서는 과정에서 쓰러지고 다치는 것을 보고는 사제관에서 나와 스스로 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갔다. 아울러 교실에 누워 있던 이규식 베드로 신학생도 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갔고, 그 뒤 그의 소식은 알 길이 없게 되었다. 아마도 이규식 베드로 신학생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구타를 당하였으므로 수감 생활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1950년 10월 18일 국군의 평양 탈환 직전에 함께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과 함께 총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약전
 
 
  본문 출처: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약전
  (2022. 0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