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료

[춘천] 포천 동헌과 형방 터-홍교만, 홍인
조사일시 : 2006.08.29
하느님의 종 홍교만과 아들 홍인이 살았던 포천 고을의 관아 터
"홍교만 하비에르는 권철신의 외숙으로 경기도 포천현에서 살았습니다. 젊어서 진사에 올랐고 뒤늦게는 경학을 좋아했는데, 권씨 집안에서 천주교를 믿자 그 역시 믿고 따랐으며, 벼슬할 생각을 끊어버리고 고향 이웃의 영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딸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에게 시집을 간 일로 인해 평소에 남들의 비방을 받아왔는데 이때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황사영 <백서> 40-41행
홍인 레오가 신앙을 증거한 포천 형방과 감옥 터
14일에는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그의 아들 (홍인) 레오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레오는 고향 마을인 포천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서울이나 지방에서 체포된 교인들을 모두 금부로 이송하였다. 거리마다 포졸들의 왕래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일 사이가 없었다. 금부와 좌우 양 포도청과 형조의 감옥은 모두 초만원을 이룰 정도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성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 중에서
1801년 박해 때에 그의 이름은 자연히 눈에 띄게 되었고, 얼마간 그의 아버지와 함께 수도 서울로 피신하러 갔다. 그 이후 모면할 어떤 방법도 없음을 보고서 그들은 함께 그들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도중에 그들은 포졸들을 만났고 붙잡혔으며, 그의 아버지가 수도 서울에 인도된 반면 그는 포천으로 끌려갔다. 그는 침착함과 평온함을 온전히 지니고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와의 이별만이 그에게 고통스럽고 애절하게 보었다. 그는 3,4일 간격으로 많은 신문들을 받아야 했으며, 또한 포졸들의 비난과 욕설도 받아야 했는데, 줄곧 그의 신앙 증거에 단호하였다. 성 다블뤼 주교의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중에서
하느님의 종이 처형된 형장으로 추정되는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일대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음력 12월 27일, 이 마을에서 44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 큰 광채가 그의 시신을 에워싸서 그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으며,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였고, 특히 포졸들은 끊임없이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를 되뇌었다. 성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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