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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교황 대사관

주한 교황 대사관

 

하느님의 종 패트릭 번(Patrick J. Byrne) 주교 사목지

  

서울대교구 현장조사: 2019년 2월 26-28일

 

주한 교황청 대사관 경당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언제나 나의 소원이었습니다.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내게 이런 은총을 주셨습니다."

 

 

 

문장: "Nisi Dominus" (주님이 아니시면, 시편 127)

 

 

 

"내가 지닌 사제직의 은총 다음으로 내 삶의 가장 큰 은총은

당신들 모두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수난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패트릭 번(Patrick J.Byrne, 한국명: 방일은) 주교 (1888-1950), 한국교회 초대 교황사절

미국 워싱톤 D.C. 출생. 1915년 6월 23일 사제 수품을 받고 6월 30일 메리놀외방선교회에 입회하였다.
1922년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에서 메리놀외방선교회에 한국의 평안도 지역을 위임하자 한국 첫 지부장으로 선출되어 1923년 5월 한국에 입국하였다.

의주, 신의주본당에서 사목하였고, 1927년 평양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일본 교토지목구장, 한국 초대 교황청 순시자 등을 거쳐 1949년 초대 주한 교황사절로 임명되어 명동대성당에서 주교품을 받았다.

패트릭 번 주교는 1948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 받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명동 주교관에서 체포되어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의 행진'을 겪고 중강진 하창리수용소에서 62세로 선종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교 문장에 무궁화를 새겨 넣었다.

 

 

주한 교황 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Alfred Xuereb) 대주교와 현장조사단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번 주교님을 저의 선임자로 본받기 위해 그와 영적으로 손잡고 싶습니다."

 

1926년 신의주본당 제3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패트릭 번 신부(당시)는
성당 신축과 교세 확장으로 입교자 수를 증가시켰다.

 

알프레드 슈에레브 교황 대사와 유흥식 주교가 패트릭 번 주교의 초상을 경당 제의실에 걸고 있다.

 

"매일 제의실에서 주교님 사진을 볼 때마다 그의 신앙적 용기에 감동받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번 주교님은 한국 교회 초대 교황사절이었고 저는 교황 대사 첫 부임지로 한국에 왔습니다."

 

패트릭 번 주교에 관한 내용이 담긴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시복자료집>을 들고 있는 교황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