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료

[서울] 서소문밖 순교지-하느님의 종 25위
조사일시 : 2006.03.07
서소문 공원에 있는 순교자 현양탑
이곳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교 선조들 가운데 44위가 시성되었고, 25위가 하느님의 종으로 현재 시복 추진 중에 있다.
체포된 지 15일 만에 의금부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서소문 밖 형장으로 끌려 가던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그는 사형수가 타는 수레에 올라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소리 높여 외쳤다. "당신들은 우리를 비웃지 마시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천주님을 위해 죽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오.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의 울음은 진정한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고, 당신들의 즐거운 웃음은 진정한 고통으로 변할 것이오." 형장에 이르자 참수형이 시작되었다. 이때 그는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것보다 하늘을 보면서 죽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머리가 반밖에 베어지지 않자 그는 몸을 곧추세우고 십자 성호를 긋고 다시 내리친 일격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최(필공) 토마스는 나이가 들고 병이 많은데다가 옥살이를 오래하여 이미 지쳤으므로 수레에 오를 때에는 인사불성이었는데, 형장 가까이에 이르자 비로소 얼굴에 기쁨이 나타났습니다. 맨 먼저 처형당했는데 이때 나이 56세였습니다."<황사영 "백서" 중에서>정조 임금의 각별한 배려를 받고 평안도 지방 심약에 임명되었으며, 임금의 도움으로 결혼까지 하였던 최필공. 그러나 마음 깊은 곳의 하느님께 대한 갈망은 이 모든 것을 내어놓고 순교의 칼날을 받게 하였다.
법에는 사형을 받아야 하는 자들의 옷을 벗기라고 명해졌으나 여자들을 그렇게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옷을 입은 채 죽기를 청한다고 상관에게 알려주시오. 내포 출신 강완숙 골룸바, 어려서부터 뛰어난 통찰력에 강하고 곧고 용감한 성격을 겸비했던 그녀는 천주교 입교 후 영웅적인 덕행으로 초기 교회 공동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체포되어 더욱 혹독한 형벌을 받았지만 굳건히 신앙을 증거하고 1801년 7월 2일 동료들과 함께 서울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녀의 나이 40세였다.
교회 창설 초기에 형 최인길 마티아에게 교리를 배워 열심한 신자가 된 최인길 이냐시오. 포도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은 후 형조에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죄목을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1) 1791년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저버린 죄, 2)1795년에 형이 죽은 뒤에도 천주교를 신봉한 죄, 3)동료들과 함께 천주교 교리를 널리 전파한 죄, 4)체포된 후에도 천주교 교리를 훌륭하다고 설명한 죄, 5)주문모 신부를 영입하고, 그를 섬긴 죄. 이에 따라 이냐시오는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을 받고 1801년 7월 2일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