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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장대-이정식, 양재현
조사일시 : 2006.04.18
가세, 가세 천당으로 가세
1868년 8월 19일 오전 9시...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어라. 여러 사람 중에 낸들 어찌 너희를 죽이기를 좋아하리오마는 이 날이 받은 날이라. 아깝고 아깝도다. 이 사람들아 다만 한 말만 하라. 항복은 없어지고 가세, 가세 천당으로 가세 하니, 관장이 말하기를 너희가 다 죽기를 원하느냐?하고 하나 살면 다 살 터이고 하나 죽으면 다 죽을 터이니 항복하라하여도 듣지 아니하니 관장의 말이 나도 이제는 할 수 없다하고 이제는 상을 차려다 주어라하고 속히 죽이라하니 7인이 듣고 성로선공 묵상하고 주 성모를 따라가세하면서 좋은 형상 나타난다....<병인군난 치명사적>
목을 주워 붙여서 놓고 있다가 차례로 찾아내서 놓고 나니 해가 일몰하여지고 어두운 밤이라. 모두 등불을 들고 염습하여 가지고 장사한지라.
전후 구경하는 자와 친척 처자와 이선달의 며느리 이 아네스와 최 마리아(양 마르티노의 아내)와 양 마르티노의 아들 베르나르도와 며느리 엘리사벳이 다 증참하는지라. 이선달을 먼저 죽이라하고, 또 이어서 양 마르티노를 죽이고, 그 후는 차례로 죽이고 7인은 다 한가지로 다 치명함.구경하던 처자와 자식과 차례로 죽음을 기대하고 있다가 목을 주워 붙여서 놓고 있다가 차례로 찾아내서 놓고 나니 해가 일몰하여지고 어두운 밤이라. 모두 등불을 들고 염습하여 가지고 장사한지라. 그 시에 증참하던 이 아네스는 현시 미국(하와이)으로 가서 삽니다. 계묘년(1903년) 5월 거.<병인군난 치명사적>
흥선 대원군의 1868년 병인박해 당시, 통영에는 우수영(해군사령부), 그리고 동래에는 경상좌수영이 있었다. 조선왕조시대 군영에는 지휘관이 군사들의 열병과 훈련을 하던 연병장과 그 정면에 간혹 중죄인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던 돌로 쌓은 놓은 장대가 있었다. 조선시대 정조 이후 임금들의 조정일기인 <일성록>에 의하면 대원군의 병인박해가 시작된지 2년 뒤인 1868년 8월 10일 이곳 장대골에서 당시 경상 좌수사 구주원이 천주교의 동래지역 선교회장인 이정식 요한 등 모두 8명을 처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에서 피를 흘리며 순교한 8명 가운데, 하느님의 종 이정식 요한을 포함한 4명의 시신은 1977년 9월 19일 한국순교자기념관 뒷동산으로 이장되었으며, 나머지 4명의 묘지는 아직 찾지 못하여 순교 기념비만을 세워 두고 있다.
장대골 순교 성지 관할 지역인 부산교구 광안성당은 부산교구 순교자 성당으로 지정되어, 장대골 순교지 자료 조사와 발굴 작업으로 당시의 참혹한 현장의 유품이 발견되었고, 그 치명된 장소를 매입하여 순교 기림비를 건립하였다.
현장조사의 취지에 대하여 설명하는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정일 주교
피로써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후손들은 바쁜 일상을 제쳐두고 멀리 서울, 인천 등 각처에서 모여 선조들의 시복을 기원하며 현장조사에 동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