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동문동성당-금사리성당
하느님의 종 2위: 장 콜랭 신부, 조제프 몰리마르 신부
대전교구 현장조사: 2019년 7월 9-12일
서산동문동성당(옛 서산본당): 장 콜랭 신부의 사목지, 피체지
하느님의 종 장 콜랭 신부
"배교를 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나를 어서 빨리 죽여라.
내가 배교하기를 기다린다면 헛수고다."
* 하느님의 종 장 콜랭(Jean Colin, 한국명: 고일랑) 신부(1903-1950)
프랑스 바이외 출생. 1927년 사제 수품 후 1928년 한국에 입구하였다. 성체신심이 뛰어난 콜랭 신부는 부임하는 본당마다 성체신심을 불러 일으켰다. 1942년부터 1948년 서산본당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서울 외곽의 가난한 동네인 제기동에서 초대 주임으로 사목하며 무료 보건진료소를 운영하며 본당공동체를 크게 성장시켰다. 서산본당에서 사목 중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신자들은 피난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콜랭 신부는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가르침에 따라 성당을 지키던 중 체포되어 대전으로 압송되어 목동 프란치스코수도원에서 공산군에게 피살되었다.
서산본당 언덕에 세워진 장 콜랭 신부 추모비(왼쪽). 오른쪽은 본당 제6대 주임 바로 신부 묘비석
6.25 전쟁 이후 서산본당 신자들은 콜랭 신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본당 구내에 유품을 묻은 묘지를 조성하고, 그 앞에 '고 요한 고일랑 신부 추모비'를 세웠다. 그 묘지는 2003는 대전교구 성직자 묘역으로 이전되었다.
2007년 7월 본당 설립 90주년을 기념하여 본당 뒤편에 제6대 본당 신부였던 바로(Barraux) 신부를 기리는 동산을 조성하였다. 이 동산에 바로 신부 묘비석과 콜랭 신부의 추모비를 세웠다.
금사리성당: 조제프 몰리마르 신부의 사목지, 피체지
하느님의 종 조제프 몰리마르 신부
1948년 8월 금사리본당에 부임한 조제프 몰리마르(Joseph Molimard, 한국명: 모 요셉) 신부는 6.25 전쟁이 발발하여 8월 공산군들에게 1개월 잡혀 있는 동안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받았으나 굴복하지 않았다. 1950년 9월 23-26일 사이 대전 프란치스코수도원에서 피살되었다.
조사 현장에 도착하여 기도를 바치는 현장조사단 재판관 유흥식 라자로 주교
1913년 성당 축성때 봉헌된 제대에 세겨진 문구를 확인하는 조사단
금사리성당은 1901년 설립되어 1913년 뮈텔 주교를 모시고 성당(사진 가운데) 축성식을 가졌고, 1968년 현재의 성당(오른쪽)을 완공하였다. 성모동산 앞 제대에는 '1913년 9월 2일 금사리 설치 민주교 축성'이라 새겨있다.
금사리성당 전경
조제프 몰리마르 신부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유서를 작성하였다.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유산으로 인근(금사리) 도시에 새 성당을 설립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 유언에 따라 1955년에 규암성당이 신설되었다.
대전교구 규암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