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13 장 콜랭

13. 장 콜랭 신부(1903-1950)

 

장 콜랭(Jean Colin, 高一郞 요한) 신부는 1903년 12월 25일 프랑스 칼바도스(Calvados)주의 바이외(Bayeux)에서 샤를르 오귀스트 콜랭(Charles Auguste Colin)과 외제니 마틸드 루쓰빌(Eugènie Mathilde Rousseville)의 아들로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았다. 그는 라 말라드르리(La Maladrerie)의 소신학교를 거쳐 열일곱 살 되던 1920년 10월 바이외 대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군에 입대한 그는, 어느 날 성녀 소화 데레사의 유해 앞에서 기도하다가 “가서 선교하라, 그것이 하느님께서 너에게 원하시는 것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제대하고 난 뒤 1923년 5월 15일, 장 콜랭 신학생은 바이외 교구장의 허락을 얻어 파리 외방 전교회에 입회하였고, 1927년 9월 24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 뒤 장 콜랭 신부는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1928년 3월 프랑스를 출발하여 그해 6월 4일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 뒤 충북 장호원 본당(현 감곡 본당)의 보좌, 용산의 예수 성심 신학교 교수를 거쳐 1931년 7월 4일 충남 공세리 본당의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1936년 7월부터 다시 예수 성심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고, 1942년 5월 서울 제기동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사목하였다. 그러다가 1948년 5월 8일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신설 대전지목구의 사목을 담당하게 되자, 7월 30일 충남 서산 본당의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공세리 본당 재임 시절에 장 콜랭 신부는 공소를 설립하고 주일 학교를 활성화하는 데 힘썼다. 또 성체 신심을 함양하고자 주일마다 성체 강복을 실시하였고, 성체 거동 행사도 개최하였다. 서산 본당 재임 시절에는 성체 신심을 위한 사도직 단체를 설립하였고, 더 나아가 성체 수도회의 설립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제기동 본당 재임 시절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냉담 노동자들을 모아 신앙 공동체를 조직하였고, 시약소와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였으며, 전교 활동에 힘써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일제 강점기 말에는 자신에게 귀국을 종용하는 경찰에게 “나는 조국 프랑스에서 선교사로 나올 때 저의 부모님에게 굳게 약속하였소. 살아도 한국에서 살고 죽어도 한국에서 죽기로 …….”라고 단호하게 말한 적도 있었다.

장 콜랭 신부는 서산 본당 재임 시절에 6⋅25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 신자들이 찾아와 피난을 권유하자, 콜랭 신부는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 10,11)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를 거절하고 성당에 남았다. 이어 7월 16일에는 북한군이 서산에 들어왔고, 장 콜랭 신부는 7월 18일 북한군에게 체포되어 서산 내무서로 끌려갔다가 이틀 뒤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장 콜랭 신부는 북한 노동당원들의 감시 아래 생활해야만 하였다. 신자들에게 위험이 닥칠까 염려되어 함부로 만날 수도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8월 16일, 북한군이 다시 성당으로 들이닥쳐 장 콜랭 신부를 체포하였고, 그는 서산 내무서로 압송되어 옥살이와 굶주림, 고문으로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게다가 눈이 나빴던 그는 안경마저 빼앗겨 장님과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북한 노동당원들이 배교를 강요하자 “배교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몽둥이로 때리자 “나를 어서 빨리 죽여라. 내가 배교하기를 기다린다면 헛수고다.”라는 말로 응수하였다.

9월 21일부터는 미 공군이 서산 지역을 폭격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9월 22일(또는 23일), 북한군들은 장 콜랭 신부를 비롯하여 주요 인사들을 트럭에 싣고 대전으로 압송하였다. 그러나 일행이 홍성과 대흥을 거쳐 신양 장터(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이르렀을 때, 미 공군의 폭격이 다시 심해져 트럭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 북한군들은 일행을 모두 트럭에서 내리게 하여 어딘가로 끌고 간 뒤, 이내 그들을 모두 학살하였다고 한다. 이때 장 콜랭 신부도 살해되었을 것이다.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본문 출처: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약전
  (2022. 0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