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료

치명자산, 숲정이, 초남이

전주교구 현장 조사(2019. 6. 4.)

하느님의 종 2위

 

전주 치명자산



▲ 치명자산 유항검 가족 합장묘

* 치명자산 유항검 가족 합장묘에는 하느님의 종 신희와 이육희의 유해도 함께 안장되어 있다.

 

- 하느님의 종 신희(?~1802):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아내. 전라도 전주 초남이(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서 살았다. 아쉽게도 세례명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1801년의 순교 복자 유중철 요한과 유문석 요한은 그녀의 장남과 차남이고, 복자 이순이 루갈다는 맏며느리였다.

하느님의 종 신희는 남편 유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1784년 무렵 입교하였고 이후 남편의 교회 활동을 도우며 자식들을 가르쳤고, 1795년 주문모 신부가 초남이를 방문했을 때 성사를 받았다. 장남 유중철 요한이 이순이 루갈다와 동정 부부로 혼인하는 것을 허락하고 지지했다.

1801년 신유박해로 남편과 장남이 먼저 체포되어 유 아우구스티노는 서울 포도청으로, 유 요한은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이어 10월 22일에는 신희와 동서 이육희, 차남 유문석 요한, 며느리 이순이 루갈다 등도 체포되어 전주 옥에 갇혔다. 문초와 형벌 속에서도 굳게 신앙을 지켰고, 11월 14일 차남과 장남이 먼저 교수형으로 순교하였고, 나머지 가족들은 각처의 관비와 노비로 보내라는 조정의 명에 따라 11월 18일 유배지로 향했다. 그러나 유배지로 가던 중 아이들은 제외한 어른들은 전주로 회송되어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고, 1802년 1월 31일 하느님의 종 신희는 가족과 함께 숲정이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전주 감영에서 조정에 올린 신희의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침으로 여기며 형벌 아래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남편이 죽었는데 의리상 어찌 혼자만 살아남겠으며,

             존숭하여 받들던 도리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빨리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 하느님의 종 이육희(?~1802): 1801년 순교자 유관검의 아내로, 전주 초남이에 살았다. 동서 신희와 마찬가지로 아쉽게도 세례명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육희는 1784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가 천주교에 입교할 때 함께 천주 신앙을 받아들여 실천하였다. 1795년 주문모 신부가 초남이를 방문했을 때 성사를 받기도 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옥에 갇혔고, 문초와 형벌 속에서도 굳게 신앙을 지켰다. 신희와 마찬가지로 관비와 노비로 보내라는 조정의 명에 따라 11월 18일 유배지로 향했으나 도중에 전주로 회송되어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02년 1월 31일가족과 함께 숲정이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이육희의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다.

 

                "나라의 금지령이 비록 엄하다고는 하지만, 천주교는 본디 중요한 것입니다.

                배교하여 삶을 도둑질함은 절의(節義)에 죽는 것보다 못합니다.

                지금에 와서 어찌 여러 말을 하겠습니까? 오직 빨리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숲정이 형장 터(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1034-13 숲정이 성지와 그 인근)



▲ 숲정이 형장 터 치명비(1935년)

 

 



▲ 숲정이성지 치명비 앞에서(2019. 6. 4.)

 



▲ 숲정이성지 내 신유박해 순교자 기념비

 

전주 옥 터(전주시 완산구 현무1길 20 한국전통문화전당 후문 주변)



▲ 전주옥 순교지

 

초남이(전북 완주군 이서면 초남신기길 122-1 초남이 성지)



▲ 초남이 파가저택

 



▲ 초남이 파가저택 연못 앞에서

 

바우백이(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 바우백이는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순교 복자들과 하느님의 종 신희와 이육희의 첫 매장지로, 1914년 지금의 가족 합장묘가 있는 치명자산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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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종 신희의 막내딸 유섬이의 묘토석: 

1801년 당시 9살의 나이로 거제도로 유배를 갔고 기록에 따르면 평생 동정녀로 순교자적 삶을 살다가 1863년 71세의 나이로 선종한 유섬이의 묘소가 최근 2015년에 발견되면서 2019년 1월 일부 묘토석을 치명자산 가족 합장묘에 합토하였다.



▲ 치명자산 가족 합장묘 옆에 합토된 유섬이 묘토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