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소

순교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소

(*마산교구 복자 박 빅토리노 묘소 안내글)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묘(1956년 비로소 봉분을 크게 하고 부인의 묘와 나란히 모셔졌다)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1812~1868)

박대식 빅토리노는 경상도 김해 예동(현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출신이다. 입교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던 중 1868년의 박해로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과 김해 포졸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와 당시 예비신자이던 조카 박수연과 함께 김해 관아로 압송되었다.  그는 김해 관아에서 대구의 경상 감영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연일 배교를 강요당하며 고문을 받다 뼈가 부러지고 몸이 뒤틀렸다. 가족들이 면회 왔을 때 험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 웃옷으로 몸을 가렸다고 한다.

경상 감사는 박대식 빅토리노와 그의 조카인 박수연(예비신자) 등 동료들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1868년 10월 12일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경상 감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박 빅토리노와 동료들이 참수되자 그들의 머리를 매달도록 했다. 순교 소식을 듣고 대구로 온 가족들은 포졸들에게 돈을 주어 시신을 수습하여 선산에 모시려 하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의 외인들이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을 뒷산 챗골(차골[茶谷]) 유씨 문중 산에 봉분 없는 평장으로 매장하였다.

그로부터 90여 년이 지난 1956년 봄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크게 하고 박 빅토리노 부인의 묘도 이장하였다. 1966년 4월 15일 순교자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웠는데, 당시까지 그의 세례명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노롄조’(라우렌시오)라는 세례명을 비석에 새겼다. 2001년 8월 박대식 순교자의 세례명이 ‘빅토리노’임을 밝혀져 본 세례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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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마산교구 홈페이지)

1966년 세워진 묘비로 당시까지 세례명이 알려지지 않아 "殉敎 密陽朴公大植 노렌조"라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