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전동 성당

 

 

전동 성당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터

복자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가 참수된 곳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윤지헌 프란치스코가 능지처참으로 순교한 곳

 

 

-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의 순교터임을 알리는 표지석 -

 

 

전주 남문 밖(현 전동 성당)

 

* 전동 성당터는 전주 남문에서 경기전과 동문을 거쳐 중노송동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었다. 또한 사형 집행관인 영장이 우두머리인 중진영(현 남천교 앞에서 남문 교회와 강암기념관에 위치)과 인접한 곳이었다.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터

 

* 전동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전주는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출중한 순교자를 낳은 순교지 가운데 한 곳이다. 특히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1791년 12월 8일 전주 남문 밖(현 전동 성당 자리)에서 관장의 배교 권유와 회유를 단호히 거부하고 당당히 천주교가 진리의 종교임을 밝히면서 처형되었다.

 

* 1801년의 신유박해 때는 전라도에 처음 복음을 전파한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아우 관검, 윤지충의 막내 동생 윤지헌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능지처참형을 당하였고, 김유산 토마스와 이우집이 참수형을 당하였다. 정부에서는 유항검의 목을 풍남문 누각에 매달아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하였다.

 

* 2014년 8월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윤지헌 프란치스코 순교자는 서울 광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전으로 이루어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를 통해 복자 반열에 올랐다.

 

 

- 윤지충과 권상연 두 순교복자 기념 동상 -

 

 

너 그게 무슨 모양새냐!

 

* 군수는 나를 법대로 다루라고 명하였고, 즉시 내 목에 무거운 칼이 씌워졌으며, 그런 다음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 너 그게 무슨 모양새냐! 칼이 씌어지고 쇠사물에 묶여 죽은 것은 바른 행실이 아니다." 군수는 나를 감옥으로 데려가게 하였는데, 감방이 무너져 있었고, 보수가 미처 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다른 소동 없이 다른 방에 수감되었다.

 

* 29일 첫닭이 울자마자 우리는 길을 떠났다. ......  우리(윤지충과 권상연) 각각의 목에 18근 무게의 큰칼이 씌워졌으며, 게다가 그들은 우리 목을 쇠사슬로 묶고 나무 갈고리로 우리 오른 손을 칼 가장 자리에 고정시켰다. ...... 30일 새벽에 우리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송되었다.

 

* 채(제공) 영의정이 그 천주교인을 사형에 처하고, 백성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그의 머리를 5일 동안 대중 앞에 효시하라는 명령을 내리도록 임금을 종용하였다. 임금은 마침내 승낙하게 되었고, 전교는 지체 없이 발송되었다. 곧 임금은 간청에 넘어간 것을 후회하고 긴급 명령을 내렸으며, 집행을 유예시키도록 특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미 처음 명령이 집행되었었고, 바오로는 고결하게 그의 머리를 처형대 위에 올림으로써 1791년 신해년 12월 순교자의 영예를 얻었다. 이것이 천주교인에 대한 공식적인 첫 번째 처형이었고, 바오로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존경으로 대상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그들이 하느님 앞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함께 나누리라는 희망을 감히 갖는다

 

*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그의 동생 유관검, 그리고 윤지헌 프란치스코는 참수되어 능지처참을 당해야 했다. 다른 두 명, 우집과 김유산 토마스는 참수형만 받았다. 즉시 그들은 전라도의 수부인 전주로 이송되었고, 음력 9월 17일(양력 10월 24일) 감사는 그들 한 명 한 명을 결안에 따라 처형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역시 기소되어 법의 보호에서 제외되었고, 관례에 따라 집과 재산을 모두 몰수당했다. ...... 우리는 그들이 하느님 앞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함께 나누리라는 희망을 감히 갖는다.

 

- 성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 중에서 -

 

* 능지처참: 머리를 밴 다음에 사지를 자르는 것이니 몸체와 함께 모두 여섯 토막을 내는 것이다.

 

 

 

 

 

 

 

 

 

 

 

 

 

 

 

 

 

 

 

 

- 순교자들의 피가 서린 곳에 세워진 전동 성당 -

 

 

전동 성당 설립


1889년 봄, 전동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보두네 (프랑스 선교사) 신부가 임명되고 본당이 설립되었으나 전주는 당시 개항지가 아니었고 전주 감영이 위치하고 있어 보두네 신부는 전주에 곧바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주 근교인 대성리(완주군 소양면)에 머물면서 전교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 후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100주년이 되던 1891년 봄에야 현재의 자리에 본당의 터전을 마련하고, 전교를 시작하여 호남의 모태 본당이 되었다.


 

성전 건축


전동성당은 1908년 보두네 신부가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7년 만인 1914년에야 우여곡절 끝에 외형 공사를 마쳤다. 성당 건립의 공사 청부는 중국인이 맡았다. 중국인 인부 100여 명이 벽돌을 직접 구워서 썼고, 주춧돌은 1909년 7월 전주부의 허가를 얻어 남문밖 성벽의 돌을 가져다 썼다. 이로써 1791년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의 순교 현장을, 또 1801년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동료 순교자들의 능지처참과 참수를 지켜보았던 그 성곽의 돌들이 하느님 성전 건립의 주춧돌로 사용된 것이다.

 

 

- 전동 성당 내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유리화 -

 

 

 

- 처형된 복자 윤지충, 권상연, 유항검의 목을 매달아 두었던 풍남문 -

 

* 처형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던 죄인들의 목을 그 문 위에 걸어 두어 지나다니는 행인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도록 경각심을 주던 곳이다.

 

 

 

<전동 성당 순례 안내>

 

* 미사 시간:

 

- 평일 미사:  새벽미사 월~금요일: 오전 5시 30분

                    낮 미사: 금요일 오전 10시

                    저녁 미사: 화~목요일: 오후 7시

                

- 토요일: 오전 5시 30분, 오후 4시(어린이 미사), 오후 6시(중고생 및 특전 미사)

- 주일: 오전 5시 30분, 9시, 10시 30분, 오후 5시, 8시

* 고해 성사: 평일 미사 전 후 10분

 

* 기타 사항: 성당 좌석 410석

 

* 교통편: 대중교통 이용

- 전주에서 전동, 남부시장, 평화동, 교도소 방면 버스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