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관아와 형장터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의 순교지

- 예산 관아터(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600번지 예산군청) -

-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가 참수된 것으로 추정되는 예산 장터(현 예산읍 예산리 상설시장) -
그는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기도를 마친 다음 칼날을 받았다...

김광옥 안드레아(1741?-1801)
충청도 예산 여사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김광옥 안드레아는 본디 훌륭한 자질을 지녔음에도 지나치게 사나운 성질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그를 무서워하였다. 그러던 그가 천주교에 입교한 뒤 어린 양과 같이 온순한 사람으로 변하자 주변 사람들은 몹시 놀라워하였다.
김 안드레아는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드리고, 갖가지 극기 행위 실천를 실천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친척 김정득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었고, 김 베드로는 홍주로, 김 안드레아는 예산으로 압송되었다. 김 안드레아는 지쳐 쓰러질때까지 매질을 당하면서도 한결같이 신앙을 증언하며 용맹함을 드러내었다.
이후 김 안드레아는 김정득 베드로와 함께 청주로 이송되었다가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참수형을 선고 받았다. 그들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 참수형을 받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고 내려오는 길에서 갈림길에 이르러 서로 "내일 오전, 천국에서 우리 다시 만나세."라고 말하며 작별하였다.
김 안드레아는 들것에 실려 예산 형장으로 가면서도 큰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쳤고 형장에 이르러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뒤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기도를 마친 다음, 목침을 가져다 스스로 그 위에 자신의 머리를 누였다. 그리고 두 번째 칼날에 목숨을 바쳤으니, 이때가 1801년 8월 25일로, 당시 그의 나이 60세 가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