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金大建) 신부의 아버지로 충청도 면천(沔川)땅 솔뫼에서 태어났다. 1814년에 순교한 할아버지 김진후(金震厚)와 큰아버지의 권면으로 입교한 뒤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하여 경기도 용인(龍仁)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 무렵 나 베드로(모방) 신부를 찾아가 세례와 견진 성사를 받고 용인으로 돌아와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1836년 15세 된 아들 김대건을 모방 신부에게 맡겨 마카오에 있는 신학교로 유학보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김순성(金順性) 일당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아들을 외국으로 보낸 국사범으로 간주되어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고 한때 배교하였으나, 형조로 이송된 후 배교를 취소하고 9월 26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