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98 김성희 암브로시오

98. 김성희 암브로시오 (1815~1868)

 

김성희(金聖熙) 암브로시오는 1839년의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1841년에 순교한 김성우(金星禹) 안토니오 성인과 평택 방씨 사이의 외아들로, 경기도 구산(현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희백’(希伯)이다.

암브로시오는 장성한 뒤 전주 이씨 범회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후사가 없었으므로 숙부 김윤심(金允深) 베드로 알칸타라의 손자 김교익(金敎翼) 토마스를 양자로 삼아 대를 잇게 하였다. 그는 부친 안토니오의 성품을 닮아 아주 착하고 인자했다고 한다.

20세 무렵이 되었을 때, 암브로시오는 부모와 함께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파치피코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다가 부친 안토니오가 순교하자 그 시신을 찾아다가 구산에 안장하였고, 회장 소임을 맡아 매부 홍희만(洪喜萬)에게 교리를 전하는 등 이웃 전교에 노력하면서 신앙을 실천하였다. 또한 약국을 경영하여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가난한 이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등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구산 마을이 다시 박해자들의 표적이 된 것은 1868년의 무진박해(戊辰迫害) 때였다. 이때 김성희 암브로시오는 숙부 베드로 알칸타라 등과 함께 체포되어 광주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

암브로시오는 이후 여러 차례의 문초와 형벌을 이겨낸 뒤 친척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1868년 3월 8일(음력 2월 15일) 남한산성의 형장에서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53세였다. 순교 후 그의 시신은 양자 김교익이 밤에 몰래 찾아다가 구산에 안장하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