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5 이현종 야고보

5. 이현종 야고보 신부(1922-1950)

 

이현종(李顯鍾) 야고보 신부는 1922년 7월 14일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해곡리 별미(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에서 이범옥 마르코와 신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았다. 그는 본디 외아들이 아니었으나 형들이 일찍 사망하면서 외아들이 되었고, 두 살 되던 해에는 모친을 잃고 편부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이현종 야고보가 네 살 되던 해, 그의 부친은 아내를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내사면 남곡리 벌터(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로 이주하였다가 얼마 안 되어 집을 나가 버렸다. 이때부터 이현종 야고보는 숙부인 이범석 마티아와 고모들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고, 다행히 신심이 깊었던 숙부와 고모들의 모범을 이어받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소년으로 성장하였다.

1931년 3월 용인의 양지 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이현종 야고보는 남곡리 본당의 박동헌 마르코 신부 밑에서 복사로 봉사하였다. 그런 다음 1937년 4월 5일 소신학교인 동성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44년 3월에는 대신학교인 용산의 예수 성심 신학교에 진학하였다. 신학생 시절에 그는 명석하고 자상한 데다가 책임감도 강하여 스승 신부와 동료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고, 남달리 동정심도 많아서 친구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사제직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였다고 한다.

1950년 4월 15일 이현종 야고보 부제는 명동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서울 도림동 본당의 보좌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본당에 부임한 지 두 달만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면서 급박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 이현종 야고보 신부는 신자들을 보살피면서 도림동 성당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한 본당 주임 박일규 안드레아 신부의 설득을 받아들여 6월 28일 그와 함께 하우고개 성당(현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는, 주임 신부의 만류에도 그날 도림동 성당으로 돌아왔다.

이현종 야고보 신부는 성당에 남아 있던 복사 서봉구 마리노와 함께 사제관에서 지내며 성무를 집행하였다. 그들은 공습이 심할 때면 사제관 옆 언덕에 임시로 파 놓은 방공호 안으로 피신하곤 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7월 3일 오후 3시경, 삼십여 명의 북한군들이 성당으로 들이닥쳤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제의실 앞에서 만난 이현종 야고보 신부를 향하여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 하고 물었다. 이에 이현종 신부가 “이 성당의 신부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이현종 야고보 신부를 겨누어 총을 쏘았다. 신부는 쓰러지면서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를 죽이는 게 그렇게 원이라면 더 쏘시오. 당신들이 내 육신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빼앗아갈 수 없을 것이오.”

 

그러자 북한군은 쓰러져 있는 이현종 야고보 신부를 겨누어 다시 한번 총을 쏘았다. 그러고 나서 총성을 듣고 성당에서 뛰어나오던 서봉구 마리노를 보고는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 하고 물었다. 이에 그가 “나는 이 성당의 일꾼이오.”라고 대답하자, 그에게 총을 겨누어 발사하였다.

당시 성당 인근에 자신들의 집에서 이러한 상황을 직접 목격한 두 사람이 있었다. 안정순(당시 82세)과 정 막달레나(당시 57세)였다. 그들은 북한군들이 돌아가자 성당으로 가서 두 사람을 살폈는데 서봉구 마리노는 이미 사망하였고, 이현종 야고보 신부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종 야고보 신부는 그들을 보고는 이불을 가져다 덮어 주고 얼굴을 닦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서봉구가 죽었으니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고모에게 연락해 달라.”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이현종 야고보 신부와 서봉구 마리노의 시신은, 7월 9일 조카 신부의 소식이 궁금해서 도림동 성당을 찾은 작은 고모 이채순 마리아에게 다시 확인되었고, 이틀 뒤 가족들이 그 자리에 임시로 매장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1953년 10월에 이현종 야고보 신부의 시신은 용산 성직자 묘지로, 서봉구 마리노의 시신은 광명리 본당 묘지로 이장되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본문 출처: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약전
  (2022. 0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