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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감옥터

조사일시 : 2006.02.15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던 옛 진주 감옥터 일대

 

슬프다,
그동안에 동생 요셉(윤봉문)은 천주학의 괴수라는 죄목으로 통영으로 압송되어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은 후에 필경 진주로 이송될 때
굶은 칡으로 발 뒤꿈치를 자못 꿰어 끄니 그 아픔이 지극하여 견디기 어렵더라.
그러나 요셉은 더욱 용맹을 다하여 바야흐로 진주 옥에 이르러
지루한 3개월 간에 갖은 문초와 혹형을 당하니 그 고생이 오죽하며,
오랫동안 옥중에서 의복과 여러가지 불편함을 어찌 다 말하리요!
필경 널(널빤지) 틈으로 올가미를 넣어 교살하니,
고난의 끝이요 영광의 빨마를 잡음이더라.
<거제도 천주교 연혁 중에서>

 

감옥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시장이 들어섰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사방에서 신자들이 체포되기 시작하자,
진주 허유고개 출신 정찬문 안토니오는
진주로 끌려와 종종 관장 앞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그동안 그의 가산은 적몰되고 가족들은 생활이 어렵게 되었지만
그의 아내는 밥을 빌어다 옥으로 가져가 그에게 넣어주곤 하였다.

어느날 다시 옥에서 끌려나와 무수히 매를 맞으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다시 옥으로 끌려 들어간 그날 밤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3일동안 옥에 버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