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일시 : 2006.03.08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비 |
"진리를 찾은 이벽은 말을 타고 감호를 찾았네.학문이 높은 감호께서 여기에 호응해 주신다면그 누가 이 진리를 따르지 않을 것인가?얼마 후 대세가 기울어지자 모두가 감호를 원수처럼 여겼지만극진한 그의 효성과 우애만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네.하늘은 스스로 모든 것을 증험해 주는데거짓으로 모함하는 무리들이 모여서 어진 이를 죽였으니 그 찬란했던 학문이 여기에서 끊어져 버렸도다.아! 백세의 훗날에 누가 감호를 알아줄 것인가?이에 몇 마디 말을 붙이면서 하늘의 뜻을 기다려 보련다."<고난의 밀사,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 중에서>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5위 (권철신, 권일신, 이벽, 이승훈, 정약종)의 묘소 |
정약종의 시신은 순교 터인 서소문 밖에서 거두어져 고향인 마재 건너편에 있는 배알미리(현 경기도 하남시 배알미동)에 안장되었다가 1959년 4월 후손들이 이주하면서 반월의 사사리로 이장되었으며, 1973년 5월에는 선산이 매각되면서 근처의 가족 묘지로 다시 이장되었고, 1981년 11월 1일 천진암(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자료집 제2집>
하느님의 종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묘소 |
"천주교가 이 나라에서 꼽았던 가장 주목할 만하고 가장 아름다운 순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생을 마쳤다.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에 대한 기억은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대단히 생생하다. ... 시신은 거두어져 아우구스티노의 고향 마을에 매장되었으며, 그의 친척들은 외교인이건 천주교이건 그의 무덤에서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다고 우리에게 단언한다.[증거 서류로 첨부된 그들의 결안을 참고할 것]"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