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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해미읍성-김진후,이보현,
조사일시 : 2006.05.09
천주교 박해시대 순교자들의 신앙 증거 터, 해미 읍성
하느님의 종 인언민 마르티노와 이보현 프란치스코는 정사박해때 체포되어 문초와 형벌로 해미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하느님의 종 인언민 마르티노와 이보현 프란치스코가 배교를 강요당하면서 형벌을 받았던 해미 관아
사람들의 기원이 태초에 그들을 창조하신 천주님께 있으니, 어찌 그분을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한 다음날 아침, 이보현 프란치스코는 장터로 끌려나가 혹독하게 매를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망나니들은 그를 넘어뜨린 후 몽둥이로 불두덩을 짓찧어 끝장을 냈다. 1800년 1월 9일 그의 나이 27세였다.
순교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받던 신앙 증거 터, 해미 진영의 동헌
"같은 시기에 용감한 두 명의 투사가 우리의 피어린 아날(annales) 잡지에서도 유명한 해미에서 영광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했다. 이보현 프란치스코의 생애. 그에게는 그의 승리에 걸맞은 동료가 있었는데, 마르티노라고 하는 인언민이 그 동료이다."<조선 순교사 비망기>둘은 해미 옥에서 만나 언제나 서로를 권면하였고, 갖은 형벌과 문초와 유혹 아래서도 전혀 변함이 없이 신앙을 고백하였다.
해미 감옥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 비오 하느님의 종이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 해미 감옥. 그는 사형 선고를 받지 못한 채 기약도 없이 옥에 갇혀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그동안의 신중하고 품위있는 성격으로 아전들과 형리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게 되어 드러내 놓고 신자의 본분을 실천하였다. 자신의 신앙의 고수하며 치러낸 10년의 옥살이 끝에 1814년 12월 1일 75세, 옥살이를 견디기 어려운 나이에 해미 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숨을 거둔 이유가 병 때문이었는지, 굶주림 때문이었는지, 혹은 매질로 사망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 신앙 고백자의 죽음과 연관되어 그가 견뎌냈던 기나긴 박해들 때문에 그는 모든 신자들에게서 사랑을 받았으며, 그의 후손들 중에 여러 명의 순교자가 나왔으니 1846년 순교한 조선의 첫 사제도 그중 한 명이다."<조선 주교 순교자 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