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일시 : 2006.05.09
예산 관아터 |
예산 여사울 출신 김광옥 안드레아. 양민 집안에서 태어나 재산이 많았고, 면장 직책을 맡았던 그는 아주 과격한 성격 때문에 사방에서 그를 무서워하였고, 어느 누구도 그를 제지하거나 누를 수 없었다. 약 50세에 같은 마을에 살던 이존창 곤자가 루도비코에 의해 천주교를 배워 모든 이들이 놀랍게도 즉시 천주교에 입교하여 아주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때 자신의 고향 예산의 포졸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하느님의 종이 참수된 곳으로 추정되는 예산 시장터 |
"죽어서 뭐가 그리 좋을게 있느냐? 왜 그토록 죽고자 고집을 부리느냐. 단 한마디면 너는 네 가족 곁으로 돌아가는데." 안드레아가 대답하였다. "...삶에 대한 갈망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하느님을 부인할 수는 없으며,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청주로 이송되었다가 다시 서울로 압송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고향인 예산으로 보내져 다음날 음력 7월 17일 참수되었다. 형장으로 실려가는 내내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본 구경꾼들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죽는 게 좋다고 노래를 부르며 형장으로 가는구나"했다. 안드레아는 "왜냐하면 나는 영복을 누리러 오늘 하느님 곁으로 가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했다.<조선 순교사 비망기>
솔뫼 성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생가터 |
하느님의 종 김진후 비오. 내포 평야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면천의 솔뫼에서 태어나 50세 가량되어 천주교에 대해 들었지만, 세상의 권세와 쾌락에 대한 관심때문에 은총의 부르심에 마음을 닫고 있었다. 자식들은 부친을 개종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고, 차츰 신자의 본분을 지키며 훌륭하게 천주교를 실천하였다. 이후 그는 10년의 옥살이 끝에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모든 신자들에게서 사랑을 받았으며 그의 후손들 중에 여러 명의 순교자가 나왔으니 1846년 순교한 조선의 첫 사제도 그중 한 명이다. "<조선 순교사 비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