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청주읍성순교성지

 청주 - 충청 병영, 청주 진영, 장대, 옥, 장터 

 순교 복자 5위와 하느님의 종 3위의  순교지 (현 청주중앙공원 일원)

 

충영 병영 등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1872년 청주목 지도 (*소장처: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청주의 순교자들

청주읍성의 순교사는 1799년 4월 17일, 홍주 출신의 복자 원시보 야고보(1730-1799)가 충청 병영(현 청주중앙공원 일원)에서 굳게 신앙을 증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1800년에는 복자 배관겸 프란치스코(1740-1800)가 같은 장소인 충청 병영에서 순교했으며, 1802년에는 복자 김사집 프란치스코(1744-1802)가 충청 병영에서 신앙을 증거한 뒤 청주 장터로 끌려가 순교하였다. 

복자 원시보 야고보(좌), 배관겸 프란치스코(중), 김사집 프란치스코(우)


1866년 이후의 병인박해 때는 진천 출신의 복자 오반지 바오로(1813-1866)가 청주 진영[중영]에서 순교하였고, 진천 배티 교우촌 출신의 복자 장 토마스(1815-1866)는 청주읍성 북문 밖 장대(군사 지휘소)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하느님의 종들 가운데
진천 새울 교우촌의 김준기 안드레아(?-1866), 청주 금봉의 전 야고보(?-1867), 보은의 멍에목 교우촌 회장 최용운 암브로시오(1836-1868) 등이 청주 진영에서 신앙을 증거한 뒤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복자 오반지 바오로(좌)와 장 토마스(우)


이 밖에도 청주읍성 안팎에서는 수많은 유명 무명 순교자들이 탄생하였다. 그중에서 천주교 순교지인 청주중앙공원에는 2002년 9월 26일에 안치된 순교 현양비가 있으며, 옛 청주 진영 순교지, 장터와 장대 순교지, 옛 청주옥 신앙 증거터에도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또 청주읍성 순교성지를 관할하는 서운동성당에는 복자 오반지 바오로 유해가 봉안되어 있다.

[*소개글 출처: 청주교구 홈페이지 청주읍성순교성지 약사]

 

 충청 병마절도사영문 정곡루[병마절도사영의 출입문] (*사진 출처: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청주목 망선루* (사진 출처: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 망선루: 청주목 관아의 부속 누정으로, 원래는 '취경루'였으나 세조 7년(1461년) 수리한 뒤 한명회가 현판을 '망선루'로 붙였다고 한다. 위의 1872년 청주목 지도에도 '망선루(望仙樓)'로 표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가 1923년 제일교회로 이건되었고, 2000년 지금의 자리인 청주중앙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출처: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청주 진영(중영) 터 (* 현재 청주제일교회 안)

 

청주 읍성 남문 터와 남문 장터 (*1872년 청주 목 지도를 보면 남문 밖에 진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주 장대 터 (*1872년 청주 목 지도에서 북문 밖에 그려져 있다)

 

 

 청주 옥 터

 *1872년 청주 목 지도에서도 용두사지 철당간[동장(銅檣:구리 돛대)]가 그려져 있어 청주 옥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사진 출처: 국가유산청)

 

청주 진영과 옥에서 신앙을 증거한 또다른 순교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

인언민 마르티노

인언민 마르티노(1737-1800)는 1797년 정사박해 때 공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공주 옥에 끌려갔다가 청주로 이송되어 모진 공문을 받았다. 이후 다시 그의 고향(충청도 덕산)을 관할하던 해미 관장 앞으로 이송되어 해미에서 순교했다. 해미로 이송될 당시 인 마르티노는 청주에서 받은 고문으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 청주읍성순교성지 관련 기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