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 성지
(*배티성지 홈페이지)
최양업 신부의 사목 중심지, 박해 시대 교우촌
복자 오반지 바오로와 무명 순교자들의 안식처
조선대목구 최초의 신학교

(*사진 출처: 배티성지 홈페이지)
배티 교우촌
배티는 '배나무 고개'라는 뜻인데, 옛날부터 이곳 주변에 돌배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충청도와 경기도의 접경 지역에 있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박해시대 이래로 오랫동안 신앙의 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 왔다. 배티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줄기는 박해시대뿐만 아니라 신앙의 자유를 얻은 시대에도 공소 순방길로 이용되어 왔다.
깊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사방으로 통할 수 있는 지형적 이점 때문에, 박해를 피해 다니던 신자들이 배티 골짜기로 모여 비밀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 더욱이 배티와 삼박골 교우촌 등 인근 여러 곳에 열심한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었다. 1837년 모방 신부가 배티 교우촌을 공소로 지정하였고, 당시 교회 밀사로 활동하던 김 프란치스코의 집도 배티에 있었다.
1850년 당시 조선대목구 소신학교 교장으로 임명된 다블뤼 신부(1857년 주교 서품)는 배티 교우촌에 초가집을 매입하여 신학교 건물로 사용하였다. 이 초가집은 성당 겸 사제관이면서 신학생들의 기숙사 역할도 있다. 한편, 1853년 여름부터 된 최양업 신부는 1854년 3월 신학생 세 명을 선발하여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유학을 보낼 때까지 신학교 지도를 맡았고, 1856년 여름까지 3년 동안 지내며 배티 교우촌을 사목 중심지로 삼아 전국 다섯 개 도(道)를 순방하였다. 여름에는 휴식 겸 배티에 머물며 한글 기도서와 교리서를 편찬하고 천주가사를 지어 널리 배포하였다.


배티성지 옛 성당 겸 신학교(*사진 출처: 배티성지 홈페이지)

배티 일대의 교우촌
1866년 병인박해 전 배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우촌은 삼박골, 정삼이골, 절골, 용진골, 발래기, 통점, 동골, 새울, 은골, 불무골, 모니, 소골, 지구머리, 지장골, 굴티 등 10여 군데가 넘는다. 이곳에 모여든 신자들은 주로 충청도 지역교회의 중심지가 된 내포지방 출신 신자들이었고 일부는 경기도와 충주 출신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에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순교자 55여명이었다. 박해가 끝나가던 1870년 무렵부터 다시 이곳에 모여 복음의 새 터전을 닦아 나갔다.
배티의 순교 복자들
복자 장 토마스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6촌 형제로 진천 배티에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는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청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진천 관아로 압송되었다가, 그곳에서 형벌을 받고 다시 군대가 주둔하는 청주로 이송되었고,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복자 송 베네딕토와(1798-1867)와 송 베드로(1821-1867) 부자, 그리고 송 베드로의 며느리였던 복자 이 안나(1841-1867)도 배티 교우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가운데,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1867년 봄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진천 관아와 죽산 관아를 거쳐 서울로 이송되어, 송 베드로의 딸과 이 안나의 아이 등 5명 모두 순교하였다.

배티성지 순교 현양비
복자 오반지 바오로와 무명 순교자들의 안식처
박해 시기에 배티 일대에서 체포된 순교자 수는 모두 34명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순교 복자는 오반지 바오로, 장 토마스, 박경진 프란치스코와 오 마르가리타 부부 등이다. 배티와 인근에는 유명·무명 순교자들의 묘소가 산재해 있다. 배티성지에 복자 오반지 바오로의 묘소가 있고, 배티·은골·삼박골·백곡·새울 등지에도 순교자 묘소가 있다. 또 배티의 '6인 묘'와 '14인 묘'에는 이름 없는 들꽃처럼 살다가 신앙 때문에 순교한 선조들의 줄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한편, 오반지 바오로가 순교한 뒤 그의 시신을 아들과 몇몇 신자들이 지장골로 옮겼고, 인근의 야산(현 진천읍 사석리 산109-1)에 급하게 안장하였다. 이로부터 151년이 지난 2017년 청주교구 ' 복자 오반지 바오로 묘소 이장위원회'가 진천 사석리에 있는 복자 묘소에서 유해를 발굴하여 진천 성당에 안치하였고, 이튿날인 4윌 29일 배티성지에서 이장 미사가 봉헌되었으며, 미사 후 복자의 유해와 진토가 새 묘소(현 백곡면 양백리 815-2)에 봉안되었다(* 오반지 복자 유해 배티성지 안장 관련 기사 링크).

복자 오반지 바오로 묘
* 일부 출처: 배티성지 소개글, 참조 자료: <교우촌 배티와 최양업 신부> (양업교회사연구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