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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옛길-한덕운26. 최필제 베드로 (1770-1801)
최필제(崔必悌) 베드로는 1770년 한양의 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약국을 하면서 생활하였다. 그는 1801년에 순교한 최필공 토마스의 사촌 동생으로, 1790년에 그와 함께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본디 진실하고 후덕한 성품을 지녔던 최 베드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질기로 소문나 있었다. 또 그가 파는 약은 값이 싼 데다가 약재도 좋아 모두가 신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촌 최필공은 어떠한 일을 할 때마다 그에게 의견을 들어본 다음에 실행에 옮길 정도였다.
최 베드로는 천주교에 입교한 뒤 교리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때 최 토마스의 아우 중에서 신자들을 욕하면서 다니는 이가 있었는데, 그도 ‘최필제만은 본받을 만하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1791년의 신해박해 때, 최 베드로도 사촌인 최 토마스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최 토마스만큼 신앙이 굳지는 못하여 일찍 박해자들에게 굴복하고 석방되었다. 또 석방된 뒤에는 거짓으로 최 토마스의 자백서를 써서 관청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이후 최 베드로는 다시 교회로 돌아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교회 일을 돕거나 교리를 전파하는 데 열중하였고, 신입 교우들을 자신의 집에 모아 놓고 교리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또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입국하자 그를 찾아가 성사를 받았으며, 자주 미사에 참석하였다. 그러다가 음력 1800년 12월 19일 자신의 집에서 신입 교우들과 모임을 갖던 중 체포되어 형조의 옥에 갇혔다.
최 베드로가 다시 체포되자, 그의 늙은 부친은 놀란 나머지 병이 나서 죽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의 부친은 비신자였는데,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이때 최 베드로는 부친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형조에 요청하였다. 이윽고 옥에서 나오게 된 그는 장례를 치른 뒤, 곧바로 형조로 가서 다시 옥에 갇혔다. 그때 형조의 관리들은 그에게 넌지시 도망할 것을 귀띔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옥으로 돌아오기에 앞서 그는 몇몇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순교의 원의를 나타냈다.
“나는 마귀에게 원수를 갚고, 전에 내가 배교했던 일을 보속하려 하네. 나의 가장 큰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자 내 머리를 바치는 것일세.”
최필제 베드로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차례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형 판결을 받고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01년 5월 14일(음력 4월 2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