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위 복자 약전

No.30 정철상 가롤로
정철상 가롤로

정철상(丁哲祥) 가롤로는 경기도 광주의 마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801년에 순교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그의 부친이고, 1839년에 순교한 유조이 체칠리아 성녀는 그의 계모이며, 같은 해에 순교한 정하상 바오로 성인과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는 그의 동생들이다.

정 가롤로는 어려서부터 부친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또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로 말미암아 집안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천주를 공경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천주를 사랑하는 데에만 힘썼다.

1794년 말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정 가롤로는 부친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가서 성사를 받았다. 주 야고보 신부는 이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정 가롤로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한편 그 무렵 정 가롤로는 포천의 유명한 신자인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정 가롤로가 20세 가량 되었을 무렵인 1801년에 신유박해가 발생하였다. 이때 부친과 숙부들이 체포되어 의금부로 끌려가자, 그는 그들을 따라가 의금부 인근에 머물면서 옥바라지를 하였다. 이를 본 관리들이 그에게 ‘주 신부의 거처를 밀고하여 부친의 목숨을 구하라’고 하였지만, 그는 결코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부친이 순교하던 4월 8일에, 정 가롤로는 의금부의 명에 따라 체포되어 형조에서 문초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교회에 해가 되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있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대면서 주문모 신부를 보호하려고 하였다. 그의 마음에는 천주를 위하여 죽겠다는 생각과 부친의 뒤를 따라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형조의 관리들은 문초를 하는 동안 가롤로의 생각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그를 옥으로 데려가도록 하였고, 그는 한 달 이상을 옥에 갇혀 있어야만 하였다. 그런 다음 최필제 베드로, 윤운혜 루치아 등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5월 14일(음력 4월 2일)이었다.

형조에서 정철상 가롤로에게 내린 사형 선고문 내용은 이러하였다.

“너는 천주교에 깊이 빠져, 집안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요사한 스승(곧 주문모 야고보 신부)을 보호하려고 송곳으로 찔러도 말하지 않았다.……주문모를 맞이하여 거처하도록 하고, 흉악한 무리들을 불러 모임을 가졌으며, 개나 돼지처럼 행동하면서 인간의 윤리를 무너뜨린 죄는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본문 발췌: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2017. 10. 20. 제3판 1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