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위 복자 약전

No.42 김이우 바르나바
김이우 바르나바

김이우(金履禹) 바르나바는 한양 명례방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유배지에서 1786년경에 사망한 김범우 토마스는 그의 맏형이자 이복형이고, 1801년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김현우 마태오는 그의 아우이다.

1794년 말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뒤, 김 바르나바는 아우 김 마태오와 함께 적극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였고, 홍필주 필립보의 집으로 가서 주 야고보 신부를 만났다. 그리고 정인혁 타대오, 최필제 베드로 등 몇몇 교우들과 함께 자주 기도 모임을 갖거나 교리를 강습하였다. 김 바르나바는 주 야고보 신부가 박해의 위험 때문에 피신해야 했을 때, 자신의 집을 피신처로 제공하고 그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주 야고보 신부가 설립한 평신도 단체 ‘명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800년 주 야고보 신부가 다시 한번 자신의 집을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게 되었을 때는 미사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기도 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김 바르나바는 아우 김 마태오와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김 바르나바는 엄한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 배교를 강요당했는데, 특히 박해자들은 그에게 그동안의 행적을 무섭게 추궁하였다. 그의 집이 신자들의 집회 장소였고, 그가 주문모 야고보 신부를 숨겨준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이우 바르나바는 아무 것도 발설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의 형벌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 냈다. 그러나 형벌을 끝까지 견디어 내지 못하고 결국 포도청에서 장사(杖死)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음력 5월경이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본문 발췌: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2017. 10. 20. 제3판 1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