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위 복자 약전

No.34 김현우 마태오
김현우 마태오

김현우(金顯禹) 마태오는 한양 명례방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1786년경 유배지에서 사망한 김범우 토마스는 그의 맏형이자 이복형이고, 1801년 포도청에서 매를 맞아 순교한 김이우 바르나바는 그의 친형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되어, 맏형 김 토마스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김 마태오는 형인 김 바르나바와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당시 그들 형제에게 세례를 준 사람은 이승훈 베드로였다. 이어 1785년에 일어난 ‘명례방 사건’으로 김 토마스가 유배를 가면서 그들 형제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비밀리에 기도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1794년 말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뒤, 김 마태오는 형과 함께 적극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홍필주 필립보의 집으로 가서 주 야고보 신부를 만났으며, 정인혁 타대오, 최필제 베드로 등 몇몇 교우들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 공동체 안에서 자주 기도 모임을 갖거나 교리를 강습하였다.

이후 김 마태오는 주 신부가 박해의 위험 때문에 잠시 형의 집을 피신처로 삼자, 그곳으로 가서 미사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형과 함께 주 야고보 신부가 설립한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또 1800년에 주 신부가 다시 한 번 형의 집을 방문하자, 김현우 마태오도 그곳으로 가서 교우들과 함께 미사에 참석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김 마태오는 형 김 바르나바와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특히 김 마태오가 체포될 때에는 찬란하고 커다란 십자가가 나타나, 그의 앞에서 옥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고 전한다.

포도청에서는 곧바로 김 마태오에게 엄한 문초와 형벌을 가하면서 배교를 강요하거나 그동안의 행적을 추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알려진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의 종적도 밀고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굳센 신앙의 의지로 형벌을 이겨내고 다음과 같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다.

“삼 형제가 함께 천주교에 빠져 똑같은 악행을 함께 저질렀으며, 남녀가 뒤섞여 지내면서 천주교 서적을 외웠다. 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그릇된 길로 이끌고 세상을 어지럽혔다. 비록 형벌을 당해 죽는다고 할지라도 ‘천주교는 끝내 옳은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김현우 마태오는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 8명의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본문 발췌: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2017. 10. 20. 제3판 1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