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110 최제근 안드레아

110. 최제근 안드레아 (1848∼1868)

 

최제근(崔濟根) 안드레아의 본관은 강릉(江陵)으로, ‘제근’은 보명(譜名: 족보에 기록된 이름)이다. 충청도 목천 소학골(현 충남 천안시 북면 납안리) 출신으로, 1866년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최종여(보명은 가석[嘉錫]) 라자로는 그의 부친이고, 최천여 베드로는 그의 중백부이다. 또 1910년에 사제품을 받은 최문식(崔文植, 베드로) 신부는 안드레아의 후손이다.

최제근 안드레아는 병인박해 때 부친이 체포되어 순교한 뒤 소학골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였고, 이후 비신자 집을 전전하며 막일을 하여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순교한 교우의 아내로 의지할 데가 없던 용인 출신의 방 데레사와 혼인하였다.

안드레아와 데레사 부부는 1868년 4월(음력) 죽산 포교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안드레아는 포교가 형벌을 가하면서 “교회 서적을 바치고, 교우들을 밀고하라.”고 했으나, 이를 잘 참아내면서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죽산 관아로 압송되어 다시 형벌을 받게 되자 잠시 마음이 약해졌지만, 아내 데레사의 권면에 힘입어 순교 원의를 다질 수 있었다. 그는 옥중에서 동생들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고 한다.

 

나는 아직 살아 있으나 주님을 위해 죽을 것이다. 너희들은 주님의 명에 따라 열심히 교리를 지키면서 본분을 잃지 않도록 하고, 서로 우애 있고 화목하게 지내다가 죽은 뒤에 천국에서 서로 반갑게 만나도록 하자.”

 

이후 최제근 안드레아는 옥에 수감된 지 3개월 만인 7월(음력)에 아내 방 데레사와 함께 옥중에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20세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