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일시 : 2006.03.07
좌 포도청 터- 서울 종로구 수은동 56번지 |
성직자 영입을 위하여 교회의 밀사로 파견되었던 하느님의 종 윤유일 바오로와 지황 사바, 밀고자에 의해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위험에 처해졌을 때 중국인 행세를 하여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이 체포된 역관 출신 최인길 마티아. 이들은 체포된 날부터 포도청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그들의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로운 답변과 형벌 속에서도 얼굴에 번져나오는 천상의 기쁨은 박해자들의 분노를 부추겼고, 결국 어찌할 수 없는 그들의 굳은 신앙으로 사정없이 매를 맞고 숨을 거두게 되었다. 1795년 6월 28일 그들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다.
우 포도청 터-서울 종로구 종로 1가 89번지 |
"필립보야, 너는 어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머리 위에 임하시어 비추고 계심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그릇된 길로 향해 가려고 하느냐". 홍필주 필립보, 그는 포도청으로 끌려가 형벌을 받으면서 굳게 신앙을 지켰지만 형벌이 계속되면서 점차 마음이 약해지게 되었다. 조사를 받으러 가던 그의 어머니(계모) 강완숙 골룸바의 아들을 향한 이 외침은 그로하여금 순교의 길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였다.
경기도 광주 출신 심아기 바르바라. 성인들의 모범에 감동하여 하느님께 동정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모범적으로 교회의 법규를 지켜나갔던 그녀는 1801년 포도청에서 배교를 강요 당하며 모진 형벌을 받았지만 신앙은 변함이 없었다. 계속되는 형벌 속에 순교할 때 그녀의 나이 18세였다. 그녀에 앞서 체포된 오빠는 형벌을 이기지 못해 배교하고 유배를 떠났다. 그녀가 순교한 뒤에 오빠는 박해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저는 제 누이 바르바라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가르쳐 포도청에서 매를 맞아 죽게 하였는데, 누이는 끝까지 (신앙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전옥서 터: 종로구 종로 1가 20-3 |
정철상은 형조에서 문초를 받으며 한 달 이상을 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처럼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사학 죄인으로 불리우며 전옥서에 갇혀 형조와 의금부, 포도청으로 끌려다니며 형벌 속에 배교를 강요 당하고, 동료 신자들을 밀고하도록 재촉 받으며 천주교 신자임을 증거하였다.
천주교를 신앙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옥에 갇혔다 다시 끌려 나와 문초와 형벌을 받고 다시 옥에 갇히기를 반복했다 |
하느님의 종들 중에 지도층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한 의금부 |
형조 터-서울 세종로 61-3 일대 |
정철상 가롤로. 어려서부터 부친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에게 탄탄한 신앙 교육을 받고 자라온 그는 부친과 숙부들이 체포되어 의금부로 끌려가자, 그들을 따라가 의금부 인근에 머물면서 옥바라지를 하였다. 관리들은 그런 그에게 주 신부의 거처를 밀고하여 부친의 목숨을 구하라고 하였지만 그는 결코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1801년 4월 8일 부친이 순교하던 날, 의금부의 명에 따라 체포되어 형조에서 문초, 형벌을 받고 사형 판결을 받아 서소문 밖에서 동료들과 함께 참수되었다.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얼마 안되어 맏형 김범우 토마스에게 교리를 배웠고 형 김이우 바르나바와 함께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던 김현우 마태오.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그동안의 행적을 추궁당하며 형벌을 받던 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 삼 형제가 함께 천주교에 빠져 똑같은 악행을 함께 저질렀으며, 남녀가 뒤섰여 지내면서 천주교 서적을 외웠다. 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그릇된 길로 이끌고 세상을 어지럽혔다. 비록 형벌을 당해 죽는다고 할지라도 천주교는 끝내 옳은 것이라고 하였다."
경기감영 터-서울 서대문구 충청로 1가 |
경기도 양근 출신으로 가난하고 몸과 마음이 약한데다 외모 또한 보잘것 없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았고, 서른 살이 되도록 혼인할 여성을 구할 수조차 없었던 조용삼 베드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그를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하늘에는 두 명의 주인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천주님을 위해 한 번 죽는 것뿐이며,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 경기 감영으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를 받고 마지막 형벌 때에 그가 고백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다. 그는 옥중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으며, 모진 형벌로 옥에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