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료

경상 감영, 대안 성당

조사일시 : 2006.04.19.

대구 경상감영 공원
(대구시 중구 포정동 10-15)

 

"아까는 혹형을 견디기가 너무 어려우 천주님을 배반하였지만, 이것은 크나큰 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뉘우치고 다시 관장님 앞으로 온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저를 죽여 주십시오.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실한 신자입니다."

잠시 마음이 약해졌던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가 다시 배교를 취소한다고 큰소리로 외치자 화가 난 관장은 심하게 매질을 하게 하였고,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끌려서 옥에 들어서자마자 숨을 거두었다.
1815년, 당시 그녀의 나이 50세 가량이었다.

 


을해박해 시기에는 주로 청송, 진보, 영양 일대에서 체포된 교우촌 신자들이
이곳 경상감영으로 이송되어 형벌을 받으며 목숨을 바쳤다.

 


경상감사 이학수가 아뢰기를, 죄인 가운데 박보록(방로), 김사건(안드레아), 안사홍(안군심), 박사의(안드레아) 등
네 놈은 죽기를 맹세하고 뉘우치지 않으니,
끝내 고치지 않고 재범하는 자의 형율에 해당한다는 것은 다시 의론할 것도 없습니다.


... 신의 대구감영에 체포해 가둔 박보록 등 15명은 모두 깨우쳤다고 자복하였으나
... 형조에서 아뢰기를, 박보록, 안사홍, 김사건, 박사의 등 4명의 죄수는 죄를 범한 것이 용서할 수 없으며,
정황 자취가 의심할 것이 없으니,
예에 따라 감사에게 명하여 격식을 갖추어 결안을 받고 아뢴 뒤에 처리토록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일성록, 순조 27년 6월 7일>

 

 

박해가 일어나자 수색을 피할 길이 없음을 알고 직접 안동 관아로 가서 천주교 신자임을 자백한 김세박 암브로시오.
대구로 이송되어 그곳 감옥에서 동료들을 만나 서로 힘이 되어 주며 신앙을 지켜나갔다.
그는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하고 처형의 날을 기다리다 형벌과 대재로 쇠약해진 탓에
67세의 나이로 옥고를 치르던 중 숨졌다.

 

 

옥에 갇혀 관장의 명령에 따라 한 승려와 교리에 대한 토론을 벌이게 된 박경화 바오로.
그의 설명에 막힘이 없는 것을 본 관리들은 천주교는 참된 종교라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감사가 새로 부임함에 따라 옥에서 끌려나와 다시 형벌을 받게 된 그는 노령에다
여러 차례의 형벌로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고 평온한 기색으로 기도드리며 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33세 가량에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을 증거하며 숨을 거둘 때 그의 나이 70세였다.

 

 

1815년 을해박해 때는 최봉한 프란치스코, 서석봉 안드레아, 김시우 알렉시오가 옥사하였고,
1827년 정해박해 당시에는 경상감옥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고 사형판결을 받은 후
감옥생활을 하던 박경화 바오로, 안군심 리카드로, 김세박 암브로시오가 옥사하였다.

 

 

청송 죄인 최봉한(프란치스코)은 정약종을 따라 다니면서 배웠고,
주문모를 스승으로 섬겨 전해 받았으며,
사학의 장물들을 수습해서 몰래 재를 넘어 깊은 산골로 들어가서는 유민을 유혹해서 모아 스스로 교주가 되었는데,
잡혀 와 감영의 옥에 갇혔다가 곧 죽었습니다.
<순조실록, 권18, 15년 6월 18일>


 

조선시대 말전 골목, 소전 골목 서북쪽에 있던 민정을 살피던 오리정 마당은 조선시대 중죄인들을 이곳에서 교수형으로 처형했다고 전한다.
병인박해 때 마산교구 관할의 밀양 명례와 백산에서 신석복 마르코와 오 야고보가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이송되어 와
이곳에서 교수형을 당하여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할 대안 성당 신자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