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료

나주

광주대교구 현장조사(2019. 6. 3.)

하느님의 종 3위

 

나주



▲ 나주 순교자 기념 경당 내부

 

* 나주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유문보 바오로, 유치성 안드레아, 강영원 바오로

 

- 하느님의 종 유문보 바오로(1813?~1872): '작객'이라고도 불림. 전라도 나주 사람으로 장성에 살다가 천주 신앙을 접하고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이후 박해를 피해 전라도 영광과 충청도 남포 등으로 이주해 살다가 장성 삭별리에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했다.

1871년 신미박해 때 음력 11월 유 바오로는 한 동료의 밀고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되었고, 나주 옥에서 유치성 안드레아와 강영원 바오로 등과 함께 옥살이를 했다. 영장 앞으로 끌려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만 번을 죽더라도 천주 신앙을 믿겠다"고 신앙을 증언했다. 모진 형벌을 받고 혹독한 옥살이 속에서도 함께 서로 권면하였고, 유 바오로는 혹독한 고초로 병이 들어 옥사하였다. 때는 1872년 3월 20일과 4월 16일 사이로, 당시 그의 나이 60세 가량이었다.

 

- 하느님의 종 유치성 안드레아(1825~1872): 경상도 출생. 부모에게서 신앙을 물려받았다. 1827년 정해박해로 부모가 충청도로 유배되면서 유 안드레아도 충청도에서 성장했다. 장성한 뒤 전라도 무장으로 이주해 살았고, 회장 소임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신미박해가 계속되던 1872년 1월 2일 나주 포교에게 체포되었고 나주 옥에서 유문보 바오로와 강영원 바오로 등과 함께 옥살이를 했다. 유 안드레아는 유 바오로와 강 바오로와 함께 영장 앞으로 끌려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만 번을 죽더라도 천주 신앙을 믿겠다"고 신앙을 증언했다. 유 안드레아는 유 바오로와 강 바오로와 함께 모진 형벌을 받고 혹독한 옥살이 속에서도 함께 서로 권면하였고, 그러던 중 유 바오로는 두 동료가 지켜보는 가운데 먼저 옥사하했다. 얼마 뒤 유 안드레아는 강 바오로와 함께 나주의 군사 훈련장이요 형장이던 무학당으로 끌려가 태장 30여 대를 맞고 백지사형으로 순교했다. 때는 1872년 4월 16일로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다.

 

- 하느님의 종 강영원 바오로(1822~1872): 충청도 홍산 태생으로, 자는 '영운'(永云)이다. 부모 때 천주교에 입교했으며, 부모가 홍산에서 순교하자 전라도 용담으로 이주하였고, 다시 정읍으로 이주했다.

강 바오로는 젊어서 상처했으나 재혼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20여 년을 살았으며,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 교우들과 기도할 때면 언제나 겸손과 극기의 자세로 남보다 더 열심이었고, 자주 이러한 말을 하곤 했다.

 

 " 나의 소망은 박해를 당하게 되었을 때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입니다.

지존하고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수난을 받으셨으니,

나같이 비천한 사람이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신미박해가 계속되던 1872년 1월 3일 강 바오로는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되었고, 나주 옥에서 유치성 안드레아와 유문보 바오로와 함께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만 번을 죽더라도 천주 신앙을 믿겠다"고 신앙을 증언했다. 함께 옥살이를 하며 서로 권면하였고, 유 바오로가 병이 들었을 때는 밤낮으로 그를 돌보아 임종을 지켰다. 얼마 뒤 강 바오로는 유 안드레아와 함께 나주의 무학당으로 끌려가 태장 30여 대를 맞고 백지사형으로 순교했다. 때는 1872년 4월 16일로 당시 그의 나이 50세였다.

 

 

나주 옥터



▲ 나주목 옥 터(나주시 성북동 171번지 일대)


▲ 나주목 옥 터 앞에서(2019.6.3.)

 

무학당 터(나주시 남외1길 16 나주초등학교 교정)



▲ 무학당 순교터에서

 

나주 순교자 기념 성당



▲ 나주 순교자 기념 경당

 

 



▲ 나주 무학당 주춧돌과 무학당 순교터 조형물 

나주 무학당 터에서 주춧돌 10개를 나주 성당으로 옮겨와 무학당 조형물의 주춧돌로 8개를 사용하고, 2개의 주춧돌은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곳에 놓여 있다. 원래 주춧돌이 놓여 있던 나주 초등학교 교정 화단에는 '무학당 순교터 안내판'을 세워 순교 자취를 기리고 있다. 

 



▲  순교자 4분 기념 가묘(나주 성당 경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