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덕정 순교 기념관
성 이윤일 요한과 경상도 지역 순교 복자 11위 순교지
- 관덕정 순교 기념관 -
* 박해 시대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인 순교 사적지인 관덕정. 이곳은 아미산 줄기에 위치해 본래 대구 읍성의 남문 밖으로 조선 후기에는 군관과 별무사를 선발하던 넓은 연병장이 있었고, 그 한 쪽은 이전부터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49년(영조 25) 관찰사 민백상이 이곳에 시험장인 도시청을 건립하고 그 이름을 관덕당이라 하였다.
* 박해 시대에 들어와서는 관덕당 앞의 연병장이 경상도 지역 천주 교인들의 처형장으로 자주 이용되었는데, 이곳 순교자들 가운데서 1867년 군문 효수형을 받은 이유일 요한은 훗날 성인품에 올랐다. 그후 관덕당은 허물어지고 일대는 1934년에 공설 시장으로 변모하였다가 차츰 인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그 행정 구역도 계산동, 덕산동에 속하였다가 남산2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 그후 대구대교구에서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이곳에 '관덕정 순교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하고, 1983년부터 2년에 걸쳐 부지를 매입한 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기념관을 완공, 1991년 1월 20일 축성식을 가졌다. 이날 성 이윤일의 유해가 경기도 미리내에서 이장되어 기념관의 제대 아래 봉안되었다.
* 옥상에 누각이 세워진 관덕정 순교 기념관은 신앙 선조들의 굳센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입구에는 이윤일 요한 성인의 동상이 서 있고, 지하층에는 성당과 유해 전시실 그리고 순교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 이윤일 요한 성인의 영정과 유해가 모셔진 제단 -
순교 복자 11위와 관덕정
* 관덕정 형장에서 순교한 복자는 11위이다. 김희성 프란치스코, 구성열 바르바라, 이시임 안나, 고성대 베드로, 고성운 요셉, 김종한 안드레아, 김화춘 야고보 등 7위는 1816년 12월 19일(음력 11월 11일) 참수형을 받았다. 이재행 안드레아, 박사의 안드레아, 김사건 안드레아는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5월 26일(음력 4월 14일) 참수형으로 죽임을 당했다. 박대식 빅토리노는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 김해 관아에서 대구로 이송되어 이곳 관덕정 형장에서 조카와 동료들과 함께 참수형을 당했다.
* 을해박해 순교 복자 7위
이들은 처형되기 전 감옥에서 신자됨의 모범을 보였다. 7인은 모두 한 마음으로 낮에는 그들의 양식을 대기 위해서 거의 모두가 짚신을 삼았고, 밤이면 불 하나를 밝히고 모두 같이 성서를 읽고 소리 높여 함께 기도문을 암송하였다. 그들의 모습은 밝은 모습, 고요함이었다. 비신자들은 그들을 두고 '저기가 죄인들의 소굴이란 말인가'하고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감옥은 하나로 결합되어 모든 행동과 말이 절제된 훌륭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전한다. 그들이 처형된 후 관장의 명령으로 시신은 인근 지역에 매장되었다. 순교자들의 가족들은 이듬해(1817년) 봄, 교우들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시신들을 보다 적당한 장소로 옮겨 무덤 네 개를 만들어 매장했다.
* 기해박해 순교 복자 3위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안동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고 대구로 이송되어 온 이재행 안드레아, 1827년 정해박해로 상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상주에서 대구로 압송된 박사의 안드레아와 김사건 안드레아. 이들은 사형선고를 받고 12년 동안을 고통 속에서 지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이들은 다시 배교를 강요 당하며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때까지 대구 옥에 갇혀 있던 이들에게 임금의 사형 집행 윤허는 매우 기쁜 소식으로 와 닿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쓰던 물건과 옷을 다른 죄수들에게 나누어 주고 기쁜 마음으로 형장으로 나갔다. 오랫동안 이들이 옥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들은 함께 죄수들과 옥졸들 모두에게 슬픔을 안겨 주었다. 포졸들이 그들의 시신을 수습한 뒤 예를 갖춰 장례를 지내주었다.
* 병인박해 순교 복자 1위
박대식 빅토리노는 경상도 김해에서 체포되어 아직 예비신자인 조카와 함께 혹독한 형벌을 받고 대구로 압송되어 관덕정 형장에서 56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가족들이 그가 순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시신을 찾아다 선산에 모시려 하였으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의 외인들이 반대하여 마을 뒷산인 챗골 유씨들의 문중 산에 평장으로 매장하였다.
- <순조실록> 권18, 15년 6월 18일 기록 일부-
* "경상 감사 이존수가 아뢰기를 ...... 최봉한은 정약종을 따라다니면서 배웠고, 주문모를 스승으로 섬겨 전해 받았으며, 사학의 장물들을 수습해서 몰래 재를 넘어 깊은 산골로 들어가서는 유민을 유혹해서 모아 스스로 교주가 되었는데, 잡혀와 감영의 옥에서 갇혔다가 곧 죽었습니다. 그리고 죄인 안치룡, 김약고배(화춘), 고성대, 고성운, 서석봉 ...... 여 성열, 윤덕과 영양의 죄인 김종한 ...... 김희성 ..... 진보의 죄인 김시우 ...... 등은 서로 전하여 익히게 되어서 빠져들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청컨대 모두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묘당에서 다시 자세히 조사하여 율에 의하여 시행할 것을 청하니, 그를 윤허하였다.
- <순조실록> 권19, 16년 11월 8일 기록 일부 -
" 경상 감사 이존수가 사학 죄인 김종한, 김약고배(화춘), 고성대, 고성운, 여 시임, 성열, 김희성을 참수에 처한뒤 장계를 올렸다. "
<관덕정 순교 기념관 순례 안내>
* 미사 시간: 화요일 오전 10시
금요일 오후 3시
토요일 오후 5시
* 고해 성사: 미사 30분전
* 기타 사항:
- 피정: 1일 피정 가능(60명)/ 숙박 안됨
- 주차장: 소규모
* 교통편: 대중교통 이용
1) 지하철 1, 2호선: 반월당역에서 적십자병원 방향 19번 출구 - 관덕정 순교 기념관
2) 버스: 적십자병원 하차: 305, 405, 414-1, 509, 609, 840
동아쇼핑 하차: 305, 405, 414, 509, 609, 840, 909, 북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