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덕정 순교 기념관
(* 관덕정순교기념관 홈페이지)
관덕당(경상 감영 처형장)에서 순교한 순교 성인과 복자들

(*사진 출처: 대구대교구 홈페이지)
관덕당(觀德堂) 형장
조선시대 대구 읍성의 남문 밖 아미산(峨嵋山) 언덕바지에 자리했던 '관덕당'(觀德堂)은 군관과 별무사를 선발하는 시험장으로, 그 앞에 넓은 연병장이 있었다. 조선시대 국사범(정치범)과 중죄인에게 내려지는 처형방식인 군문효수형은 보통 장대(將台)가 있는 군사조련장(연병장)에서 집행되었다. 박해시대 경상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은 '사학(邪學) 죄인'이라는 죄목으로 국사범으로 다루어져 이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관덕정순교기념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관덕당은 허물어지고 일대는 1934년 공설 시장으로 변모하였다가 차츰 인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행정 구역상으로도 계산동, 덕산동에 속하였다가 남산2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구대교구에서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이곳에 '관덕정 순교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1983년부터 2년에 걸쳐 부지를 매입한 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기념관을 완공, 1991년 1월 20일 축성식을 가졌다. 그리고 이 날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미리내에서 이곳으로 이장하여 기념관의 제대 아래 모셨다.
관덕정 순교자들

관덕당 형장에서 순교한 성인과 복자는 모두 13위이다.
성 이윤일 요한(1815-1867)은 경상도 문경 여우목(호황리) 교우촌 회장으로 신자들을 보살피고 이웃에게 신앙을 전하며 여우목을 큰 교우촌으로 성장시켰다. 1866년 병인박해의 여파로 그해 11월 18일 문경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문경 관아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고 상주로 이송되었고, 상주에서 석달 동안 매달 세 차례 또다시 형벌을 받은 뒤 '사학죄인의 우두머리'라는 죄목으로 관찰사가 있는 경상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경상 감영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인 1867년 1월 21일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52세였다.
을해박해 순교자들인 복자 김희성 프란치스코, 구성열 바르바라, 이시임 안나, 고성대 베드로, 고성운 요셉, 김종한 안드레아, 김화춘 야고보 등 7위는 1816년 12월 19일(음 11월 11일)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복자 이재행 안드레아, 박사의 안드레아, 김사건 안드레아는 1827년 정해박해 때 체포되었으나 무려 12년의 옥고를 치른 뒤 기해박해 때인 1839년 5월 26일(음 4월 14일)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오랫동안 이들이 옥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은 함께 지낸 다른 수인들과 옥졸들 모두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고, 포졸들도 예를 갖추어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사를 지내주었다. 한편, 병인박해 순교자들로, 복자 신석복 마르코와 박대식 빅토리노도 각각 1866년과 1868년에 관덕정 형장에서 순교하였다.
*관련 순교지: 대구 경상 감영과 옥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