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순교자 기념 성당
"만 번 죽더라도 천주 신앙을 믿겠습니다!"
“나의 소망은 ‘박해를 당하게 되었을 때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입니다.
지존하고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수난을 받으셨으니,
나같이 비천한 사람이 어찌 예수 그리스도의 표양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 하느님의 종 강영원 바오로 -

- 나주 성당 경내의 순교자 기념 경당 -
천주교 박해와 나주
전남 지방에는 이미 신유박해(1801) 이전부터 나주에서 가까운 무안, 영광, 함평, 강진 등에까지 천주교가 전파되었다. 박해시기 나주 진영의 관할구역인 나주, 정읍, 무장, 장성 등지에 천주교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따라서 나주에서도 상당수의 신자들이 박해 때 순교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해시기 신자들의 순교 터도 많지 않고 오늘날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나주에서 순교한 순교자들만 확인되고 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전라도 지방의 행정중심지가 감영이 있던 전주였기에 전라남도 지방에서 체포된 신자들 대부분이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그곳에서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 나주 성당 -
나주 성당과 순교자 기념 경당
나주 성당은 박해시대에 나주에서 순교한 이춘화 베드로(기해박해), 유문보 바오로, 유치성 안드레아, 강영원 바오로 등 네 분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리는 경당이 자리한 곳이다. 그 가운데 세 분의 순교자가 1871년 신미박해 때 나주에 잡혀와 끝까지 함께 신앙을 증거하였고 1872년 3월 유문보 바오로는 나주 옥에서 옥사하였고, 유치성과 강영원은 4월 무학당(진영의 조선군 군사 훈련장)에서 백지사형으로 순교하였다.

무학당 순교터
무학당은 군사 시설인 나주 진영 안에 있던 훈련과 관련된 사열대로서의 성격을 갖춘 건축물로, 높은 기단 위에 건물을 세워 중앙에는 대청이고 좌우에 방을 둔 형식이다. 나주시 남외동 128번지에 소재한 이곳은 1907년 5월 나주초등학교가 개교되면서 무학당 순교터의 흔적이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주춧돌 12개가 남아 있었고, 나주의 네 분의 순교자를 현양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서 2001년 11월 7일 그중 10개를 나주 성당으로 옮겨와 무학당 조형물의 주춧돌로 8개를 사용하고, 2개는 경당 주변에 조성한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는 곳에 놓아 두었다. 나주초등학교 교정 화단에 주춧돌 2개가 있는 곳에는 순교터의 안내판을 세워 순교의 자취를 기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