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2 김범우 토마스

2. 김범우 토마스 (1751~1786?)

 

김범우(金範禹) 토마스는 중인 역관인 김의서(金義瑞)와 남양 홍씨(南陽洪氏)의 맏아들로 서울 명례방(明禮坊, 현 서울 중구 명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경주(慶州)였고, 아내는 천녕 현씨(川寧玄氏)였다. 1801년의 순교 복자 김이우(金履禹, 바르나바)김현우(金顯禹, 마태오)는 그의 이복동생들이다.

토마스는 1773년(영조 49년)에 실시된 역과 증광시에 합격한 뒤 역관생활을 하였다. 이후 그는 먼 인척인 정약전과 정약용(요한 사도) 형제를 비롯하여 이벽(요한 세례자),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이승훈(베드로) 등과 교유하였다. 그 과정에서 토마스는 요한 세례자에게 교리를 배웠으며, 1784년 겨울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에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다.

입교 이후 토마스는 신자들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였다. 그러다가 1784년 말에서 1785년 초 사이에 자신의 명례방 집을 신자들의 집회소로 제공하였고, 그 결과 서울 수표교(水標橋) 인근에 있던 신자들의 집회소는 명례방으로 이전되었다. 이 무렵 토마스는 최인길(마티아), 윤지충(바오로), 최필공(토마스), 김종교(프란치스코), 홍익만(안토니오) 등에게 교리를 전하거나 교회 서적을 빌려주었고, 동생들에게도 교리를 가르쳤다.

1785년 봄 명례방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는 이전처럼 신자들의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이때 형조의 금난서리(禁亂胥吏)들이 그 집 앞을 지나가다가 이상한 모임이 열리고 있는 것을 알고는 집안으로 들이닥쳐 성물과 서적을 압수한 뒤, 신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형조로 압송하였다.

형조로 압송된 신자들 가운데 양반인 이승훈 베드로와 이벽 요한 세례자,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정약용 요한 사도 등은 모두 훈방되었다. 반면에 명례방 집회소의 집주인인 토마스는 형조판서 앞에서 문초를 받아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는 형조판서의 강요와 거듭된 형벌에도 배교를 거부하였으며, “천주교에는 좋은 점이 아주 많으니, 천주교를 그르다고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신앙을 굳게 증거한 뒤 도배형(徒配刑)을 받았다.

김범우 토마스가 도배형을 받고 유배 생활을 한 곳은 충청도 단양(丹陽)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변함없이 큰 소리로 기도를 바치고, 교회를 멀리하고 있는 교우들을 가르치는 등 공공연하게 신앙을 실천하다가 형벌로 인한 상처로 인해 몸이 약해지면서 1786년(또는 1787년)에 선종하였다. 이후에도 단양의 노인 아전들은 토마스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선종 후 토마스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졌으며, 가족들이 이주해 살고 있던 경상도 밀양 땅(현 밀양시 삼량진읍 용전동 산102-1)에 안장되었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