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교구 하느님의 종 9위 현장 조사(2019. 5. 13.)
청주 진영 터
▲ 청주 진영 터(현 청주 상당구 청주 제일교회 내) |
▲ 청주 진영 터 표지석 |
* 청주 진영에서 신앙을 증거한 하느님의 종: 김준기 안드레아, 전 야고보, 최용운 암브로시오
- 하느님의 종 김준기 안드레아(?~1866): 충청도 진천 출신으로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뒤 진천 새울 교우촌으로 이주해 교우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새울 교우촌도 발각되면서 교우 4명과 함께 진천 관아로 압송되고, 다시 청주 진영으로 이송되었다. 모진 문초와 형벌 속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1866년 11월 23일 동료 교우들과 함께 순교했다.
- 하느님의 종 전 야고보(?~1867): 청주 금봉(현 충북 청원군 미원면 월룡리)에서 삼형제 가운데 둘쨰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유순한 성품을 지녔으며 부모에게 순명했다. 13세 때 처음 천주 신앙을 접했는데, 그에게 교리를 가르쳐 준 사람은 매부인 멍에목 회장 최용운 암브로시오이다. 1867년 10월 청주 포졸들에게 붙잡혀 청주로 압송되었고, 형관이 그가 맹인임을 알고는 풀어주려 하자 그는 이러한 말로 신앙을 증거했고, 의연함과 항구함으로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했다.
"제가 비록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맹인이지만, 마음으로는 한결같이 천주를 받들어 공경하고 있습니다."
- 하느님의 종 최용운 암브로시오(1836~1868): 충주 출생. 천주 교리를 처음 접한 뒤 교리를 배우고자 보은 멍에목 교우촌(현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으로 이주했다. 그는 이곳에서 최양업 토마스 신부에게 영세를 받았다. 입교한 뒤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고 탁월한 신심으로 1864년 28세의 나이에 멍에목 교우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회장의 본분을 다하며 지내다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멍에목에서 가까운 상주 장재동으로 피신했다. 1868년 박해가 심해지면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청주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모진 문초와 형벌 속에서 끝까지 항구하게 신앙을 지켰고 1868년 4월(음력) 이후 32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 현 교회터에 청주 진영의 관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안내문 |
청주 옥 터
▲ 청주 옥 터 앞에서 |
▲ 청주 옥 터 안내판 |
* 하느님의 종 김준기 안드레아와 전 야고보는 청주 옥에서 옥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최용운 암브로시오는 청주 진영이나 청주 옥에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은 멍에목 교우촌
▲ 멍에목 성지에서(2019. 5. 13.) |
▲ 멍에목 성지 전경 |
* 멍에목 교우촌은 하느님의 종 최용운 암브로시오가 회장직을 맡아 교우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신앙의 터전이다.
충주 관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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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 관아에서 신앙을 증거한 하느님의 종: 이부춘, 권아기련, 이기연
- 하느님의 종 이부춘(1735~1801): 충주 아전 출신. 높은 학식과 뛰어난 언변을 지녔고, 글씨도 잘 썼다. 이기연에게 교리를 배운 뒤 입교하였고, 셋째 아들 이석중을 비롯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천주 교리를 전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들 이석중과 권아기련 모두 체포되어 모진 문초와 형벌 가운데 신앙을 굳게 지켰다. 세 사람은 함께 사형을 선고 받고, 이부춘과 권아기련은 1801년 10월 4일 충주에서, 아들 이석중은 다른 날 충주에서 순교했다. 당시 이부춘의 나이는 67세, 아들 이석중의 나이는 28세였다.
- 하느님의 종 권아기련(?~1801): 충주 아전 집안 출신으로, 장성한 뒤 마찬가지로 충주 아전인 남편과 혼인했다. 이기연의 며느리와 이부춘의 아들 이석중으로부터 천주 교리를 배웠다. 세례를 받고 입교했으나 세례명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권아기련은 이부춘 부자처럼 체포되어 문초와 형벌 속에서 굳게 신앙을 지켰다. 그녀의 고귀한 항구심에 비신자들도 탄복할 정도였다. 1801년 10월 4일 사형 선고를 받고 충주에서 순교했다.
- 하느님의 종 이기연(1739~1802): 충주 연안 이씨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연마했고, 1784년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통해 천주 신앙을 접했다. 그의 딸이 권일신의 조카와 혼인하면서 권일신과는 사돈지간이었다. 이기연은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으나 세례명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기연은 이부춘과 이석중을 비롯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천주 교리를 전하여 '충주의 사도'라 불릴 정도로 충주 지역 천주교 신앙 공동체 형성에 기틀을 마련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인임이 알려져 체포되었고, 이때는 배교한 뒤 북쪽 지방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그가 천주 교리를 널리 전한 사실이 자세히 알려지면서 충주 관아로 다시 송환되었고, 이번에는 모진 문초와 형벌 속에서 굳게 신앙을 증언하여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02년 1월 30일 63세의 나이로 충주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충주 숲거리 형장 터(현 충주 우체국 뒤편)
▲ 충주 숲거리 형장 터에서 |
* 하느님의 종 이부춘, 권아기련, 이기연 모두 충주 숲거리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충주 진영 터(현 충주시 성남2길 7)와 충주 옥 터(현 충주시 성서1길 50 일대)
* 충주 진영과 충주 옥에서 신앙을 증거한 하느님의 종: 민윤명 프란치스코, 김 마르티노, 김 마태오
- 하느님의 종 민윤명 프란치스코(1822~1866): 충주 광벌리에서 태어났고, 천주 교리를 배운 뒤 영세 입교하였다. 양순한 마음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충주 맹골의 계마대로 이주하여 그곳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866년 11월 22일 계마대로 찾아온 서울 포교들에게 체포되어 충주로 압송되었고, 이후 50일 동안 충주 옥에 갇혀 모진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는 끝까지 신앙을 고백하고 함께 붙잡혀 온 동료 교우들과 순교하였다. 때는 1866년 말이고, 그의 나이 44세였으며, 당시 관례로 보아 충주 옥에서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 하느님의 종 김 마르티노(1805~1868)와 김 마태오(1829~1868): 김 마르티노는 충청도 연풍 사람으로 일찍이 천주 교리를 배워 영세 입교했다. 김 마태오는 그의 아들이다. 1868년 마르티노 가족에게 박해가 몰아닥쳐 손자 김 마티아가 먼저 체포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아들 김 마태오가 순교를 결심하고 관아에 자수했다. 충주 진영에 자수한 김 마태오는 아들 김 마티아와 함께 투옥되었고, 피신하지 않고 집에 남아 있던 김 마르티노도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포졸들은 삼대 가운데 손자 김 마티아를 풀어주었고, 김 마르티노와 마태오 부자는 함께 문초와 형벌을 받으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이들 부자는 충주 진영에서 형벌 가운데(매를 맞고) 순교했으니 당시 마르티노의 나이는 63세, 마태오의 나이는 39세였다.
▲ 충주 진영 터(위)와 옥 터(아래)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