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료

[서울] 하느님의 종 51위 현장 조사(수표교, 명례방 터, 포도청 등)




▲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가 살던 집 터로 조선에서 최초로 세례식이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 이벽 요한 세례자(1754~1785): 경주 이씨, 호는 광암. 1754년 포천 화현리에서 태어났다.

조선에 천주교 신앙이 자라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탁월한 선각자이며 지도자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가혹한 가정 박해 속에서 31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하느님의 종 김범우 토마스의 집 터로, 초기 한국 교회의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열린 명례방 자리

* 김범우 토마스(1751~1786?):  중인, 역관으로 1751년 서울 명례방(현 서울시 중구 명동)에서 출생.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형조에서 문초를 당한 뒤 충청도 단양으로 유배되어 1786년 또는 1787년 형벌 때 받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 명례방 터를 현장 방문한 하느님의 종 133위 시복 예비심사 재판진과 서울대교구 관계자들(2019. 3. 18)


 


▲ 의금부 터 - 하느님의 종 권철신 암브로시오가 혹독한 문초와 형벌 속에서 순교한 곳이다

* 권철신 암브로시오(1736~1801): 1736년 경기도 양근 출생. 안동 권씨. 호는 녹암.

저명한 학자로 이벽, 홍낙민, 윤유일, 이승훈, 이존창 등을 제자로 두었다. 아우는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고, 복자 권상문은 그의 조카이며 양자다. 신유박해 때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의금부에서 다섯 차례의 문초와 형벌 과정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혹독한 문초와 형벌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이를 두고  "다른 죄인들은 문초를 받으면 모두 제정신이 아닌 듯한데, 그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마치  잔칫상 앞에 차분하게 앉아 있는 사람처럼 대답을 한다."며 이를 지켜본 반대파의 한 사람이 전했다(다블뤼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f. 104 참조).





▲ 좌포도청은 하느님의 종 133위 가운데 20위 가량이 순교한 곳이다



▲ 좌포도청 순교터



▲ 종로성당 내 포도청(옥터) 순교자 현양관



▲ 포도청(옥터) 순교자 현양관 내부



▲ 우포도청 터 표지석



▲ 하느님의 종 송백돌 베드로와 이문홍 바오로는 우포도청에서 순교했다.


* 송백돌 베드로(1823~1867): 평민 서울 남묘 앞 출생. 어교(현 중구 광희동 인근)에 살면서 갖바치로 생활하였다. 천주교 신자인 모친의 가르침을 받아 천주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고, 병인박해가 일어난 이듬해 체포되어 우포도청에서 모진 형벌을 받으면서도 함께 갇혀 있던 교우들을 권면하였다. 문초와 형벌 가운데 44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고된 옥살이 가운데 그가 보여준 모범적인 모습에 옥을 지키던 포졸들도 "여러 천주학쟁이들 가운데 송백돌이 으뜸이다"라고 칭찬했다고 한다(<박순집 증언록> 1권 참조).

* 이문홍 바오로(?~1866?): 송도(지금의 개성) 덕바위의 양반 출신. 자신의 집을 공소로 만들어 교우들이 베르뇌 주교에게 성사를 받도록 이끌었다. 베르뇌 주교에게 송도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서울의 정의배 마르코 등과 교류하였다. 병인박해로 체포되어 우포도청에 교수형 또는 물고로 순교하였다.




▲ 전옥서 터- 순교 터이며 신앙증거 터

 
* 황석지 베드로(1767?~1833): 충청도 홍주 당산리 양반 출신. '사윤'으로도 불림. 교회를 위해 북경을 왕래한 조카 황 안드레아의 집에서 생활하다 체포되었다. 그는 좌포도청과 형조에서 모두 의연하게 신앙을 증언하였고, 사형을 선고 받고 투옥되었다가 전옥서에서 옥사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황 베드로의 행동에 한 외교인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신앙을 증언하였다."내가 섬기는 천주는 천지의 큰임금이시며,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배반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만번 죽기를 원합니다."  

* 이 에메렌시아(1801~1839): 충청도 예산 출생. 기해박해 때 수리산에서 체포된 뒤 여러 차례 가혹한 형벌을 받고 옥사하였다.



▲ 형조 터



▲ 양제궁 터 - 하느님의 종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의 순교지.

* 송 마리아(1753~1801):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 이인의 부인. 신유박해 때 체포된 신자들의 문초 과정에서 천주교인임과 주문모 신부를 숨겨져 사실이 드러나 양제궁에서 순교(賜死)하였다 

* 신 마리아(?~1801): 은언군 이인의 장남 이담의 부인. 시어머니 송 마리아와 함께 순교(賜死)하였다.

      * 양제궁 터는 현 옛 우정총국 부근으로 추정된다.